변호인 - 국가와 국민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4년 01월 02일(목) 17:31
변호인(양우석, 드라마, 15세, 2013)
 
보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혼자 영화관에 앉아 있는 듯 했다. 주변을 개의치 않고 탄성을 지르고 신음소리를 내고 박수 치고 울고 웃고…. 아마도 그만큼 강한 흡입력을 가진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와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영화는 무겁게 느낄 수 있는 사실적인 주제에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을 정도로 영화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부산에서도 발생할 것을 염려해서 1981년 공안당국이 기획 조작한 부산 학림(부림) 사건이 영화의 소재이면서 또한 배경이다.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단순한 독서 모임이 용공 이적 단체로 둔갑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불법 구금은 물론이고 거짓 자술서를 얻어내기 위해 갖은 고문을 자행해 대한민국 역사에서 인권 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화는 부림 사건을 계기로 송우석(송강호 분)이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다룬다. 부산 지역 변호사들 사이에서 속물이며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송우석이 어떻게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실제 인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도 허구'라는 영화의 첫 장면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분명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고 있다. 특히 송우석의 학력과 이력 그리고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고인의 이력과 일치한다. 다큐멘터리나 전기 영화가 아니니 상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부림 사건과 관련해서 떠돌았던 그에 대한 기사나 소문을 접해 본 사람들에게는 주인공의 실제 인물을 간과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 번에 걸친 공판과 최종 판결이 있기까지의 과정에서 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어떤 괴물 같은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뜻 있는 사람이라도 얼마나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종북 몰이를 당하는 현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과 다른 것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그만큼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 장면은 고문 경관을 증인으로 세워 심문하는 자리에서 변호인과 그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이다. 불온서적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가라고 대답하는데, 이적 행위를 심판하는 주체가 국가이며 국가가 기준을 제시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5공 세력들, 곧 통치자를 국가 혹은 국가의 대표자로 보는 태도에서 비롯한 대답이다. 애국은 곧 5공 세력들에 대한 충성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안녕은 차순위에 있게 된다. 바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인권을 유린해도 그것의 불법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통치자를 국가로 보는 태도는 왕정제도나 군주제에서나 통용되던 것으로 앙시엥 레짐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 유물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이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국가는 국민 투표에 의해 결정된 헌법에 따라 규정된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국민이 곧 국가가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를 통치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통치자는 국민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이기 때문에 통치 행위를 빌미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반국가적인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새삼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회자하고 있다. 밤새 안녕을 묻는 것이 인사가 될 정도로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과거의 아픔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국민들의 안녕보다 통치자의 이념과 철학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잘못된 시대에 대한 국민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아닐까?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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