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역하는 남편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권경숙 선교사
2013년 12월 20일(금) 14:43
새벽기도가 끝난 뒤 바다를 보니 외항선이 보였다. 선원이 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허드렛일은 아무나 할 수 있었다. 한국 선장과 갑판장이 일하는 배에는 한국 선원이 15명쯤 있었다. 한국인 요리사가 필요했지만 인건비가 비싸 따로 쓰지 않았다. 나는 남자 교인들에게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김치찌개와 된장국 끓이는 것은 쉽게 배우지 못했지만 생선국은 스튜랑 비슷해서 금방 배웠다. 김치나 조림 같은 한국 반찬 만드는 법도 짬짬이 가르쳤다. 교인들을 요리사로 취직시키고 나면 남편이나 나나 가슴이 벅차 잠이 오지 않았다. 땅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안됐는데, 배에서 일하면서는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한국 사람 집에서 일하는 하우스 보이로도 취직 시켰다. 남편과 나는 남자들을 우선 취직 시켜 가족을 부양하게 했다. 교인들을 하우스 보이로 취직을 시키고 나서는 기도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러나 가끔씩 교인들이 한국인에게 도둑으로 오인 받아 치도곤 당하거나 쫓겨나기도 했다. 은행이 없다 보니 다들 돈을 집안 구석구석에다 숨겨놓았다. 일부는 비닐에 돈을 싸서 냉동실에 넣기도 했다. 썩은 음식인 줄 알고 버리는 사람도 있고,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려서 못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마마, 우리도 음식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언젠가부터 여자들이 찾아와 매달리기 시작했다.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맞더라도 취직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다. 두들겨 맞거나 모욕을 당하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보니 전혀 두렵지 않다고 했다.
 
나의 사역지인 누아디브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모리타니의 다른 어떤 곳보다 누아디브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막이지만 바다를 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과 바다가 연결된 장관이 보고 싶다면 모리타니의 누아디브에 오면 된다. 1994년경의 누아디브 아침 바다는 홍학들이 깨웠다. 새벽기도를 끝내고 나오면 잠에서 깨어난 홍학들이 날아오르는 해변으로 해가 떠오른다. 물때가 맞는 날엔 남편과 민어도 잡고 숭어도 잡았다. 숭어는 밀물을 따라왔다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갯벌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모래톱으로는 연신 숭어들이 올라왔다. 나와 남편은 바구니를 들고 가서 숭어를 주워 담았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간 바다에서 발견한 풍성함. 우리는 삶이 이렇게 아름답고 보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차 위에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었다. 독수리의 날개는 우리 차를 완전히 덮을 만큼 넓었다. 마치 우리를 호위하듯 따라오던 독수리는 바다와 마을 가운데쯤 오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숭어는 전을 부쳐서는 마을로 다니면서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먹지 못하다 보니 앉은뱅이는 물론 눈이 멀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비타민만 처방해주어도 눈이 멀지 않을 아이들이 눈부신 햇살 아래서 캄캄하게 눈이 멀어가고 있었다. 숭어전은 풍부한 단백질과 비타민 공급원으로 이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다.
 
숭어전을 나눠주고 집으로 오면 아픈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중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내외를 찾아왔다. 남편은 선장 출신이라 이런저런 곳에서 약품을 잘 얻어왔다. 매독환자나 성병에 걸려 자궁이 다 내려앉은 여자환자도 있었다. 우리는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냈다. 신기하게도 고약을 붙여 고름을 짜내고 베타딘만 발라놓아도 상처는 나았다.
 
병원에 보내야 하는 환자들은 닥터 모하메드에게 보냈다. 병원이라고 해야 한국의 시골 보건소보다 작았다. 의사는 러시아에서 의대를 나오고 암스테르담에서 수련의를 받은 모하메드로 곱상하게 생긴 모리타니 사람이었다. 모하메드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그도 무슬림이다. 하지만 병원 문턱이 닳도록 환자를 업고 간 덕분에 그도 반쯤은 크리스찬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김치를 좋아해 가끔 김치를 담으면 모하메드 것은 따로 담기도 했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죽은 지 몇 시간 안된 교인의 눈에서 구더기가 기어나오는 것을 보고 통곡을 할 시간도 없었다. 빨리 입관예배를 드려야 했다. 비록 관도 없이 죽을 때 입던 옷 그대로 아무데나 구덩이를 파고 묻는 것이고,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고 태어나는 삶도 기구하지만 죽을 때도 기구했다. "하나님. 이 일은 절대로 저 혼자서는 못합니다. 저의 배필로 이렇게 든든한 남편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녁이 되면 고단해져 길가에 있는 돌덩이처럼 쓰러졌지만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직분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남편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을까? 나보다 더 열심히 땀을 흘리는 남편,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이 떠나가라 코를 고는 남편을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감동을 느꼈다.
 
본교단 파송 모리타니 권경숙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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