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12월 18일(수) 13:28
교회연합과 일치, 통일운동의 대부(大父) 오재식 선생의 별세 1주기를 추모하는 예배가 2014년 1월 3일(금) 드려진다.
오재식선생1주기추모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기독교회관에서 모여 장지인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묘비 제막식을 갖고, 기독교회관으로 돌아와 추모예배를 드리는 등 추모예배의 일정을 공개했다.
기독교 국제기구 활동가 1세대였던 오재식 선생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산업선교부(CCA URM)와 국제부 간사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투신했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장 겸 통일연구원장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교회협의회(WCC) 개발국장에 취임해 전 세계 빈민국가를 돌봤다. 특히 오재식 선생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지명관교수가 TK生이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 '세카이'에 연재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발행하는 일도 지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오재식 선생은 귀국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장, 참여연대 창립대표, 한국 월드비전 회장으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대북사업 활동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오재식선생1주기추모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기독교회관에서 모여 장지인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묘비 제막식을 갖고, 기독교회관으로 돌아와 추모예배를 드리는 등 추모예배의 일정을 공개했다.
기독교 국제기구 활동가 1세대였던 오재식 선생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산업선교부(CCA URM)와 국제부 간사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투신했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장 겸 통일연구원장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교회협의회(WCC) 개발국장에 취임해 전 세계 빈민국가를 돌봤다. 특히 오재식 선생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지명관교수가 TK生이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 '세카이'에 연재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발행하는 일도 지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오재식 선생은 귀국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장, 참여연대 창립대표, 한국 월드비전 회장으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대북사업 활동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