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가는 길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12월 13일(금) 15:19

집으로 가는 길(방은진, 드라마, 15세, 2013)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한국인 여성이 마약 운반범 혐의로 현장 체포되었다. 그녀는 4살 난 딸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 오랜 꿈이었던 카센터와 집을 내주어야 했고, 그나마 옮겨간 좁은 집에서마저도 집세를 못 내 쫓겨날 정도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돈을 벌자는 목적이 전부였고, 비록 불법인 줄 알았지만 가방에 있는 것이 마약이었는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 후배에게 속았다는 충격보다 더 큰 문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할 수 없는 채 기약도 없이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녀와 그녀의 문제를 대하는 주불한국대사관 직원과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의 무성의한 태도였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음에도 국가고시에 합격을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범죄자인 그녀는 단지 국격을 떨어뜨리는 암적 존재에 불과했다. 국가 기관의 태도는 수감 생활 중에 겪어야 했던 폭력이며 부조리한 일보다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또한 이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남편과 네 살 된 어린 딸을 두고 온 상태에서 기약도 없이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는 바로 이런 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모습과 이런 현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몫 챙기기에 바쁜 일부 공무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게다가 셋팅 촬영이 아니라 현지 감옥과 재소자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기 때문에 높은 리얼리티를 기대할 수 있다. 말만으로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현실이었기에 비록 장소를 위해 2년이라는 오랜 협상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현명한 판단이었고 또 필요했던 기다림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그 끔찍한 세월을 보냈는지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사실 지금이라도 이런 강한 사회성을 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이다. 관련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영화는 그녀의 고통을 단지 공감하는 정도만이 아니라 의로운 분노를 겨냥하며 만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건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억 속에 있는 그녀가 겪었던 고통의 현실을 공감적으로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분노할 것이고, 영화를 통해 처음 사실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사건의 진상과 그녀가 당한 고통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기관의 무성의한 태도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공권력 행사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가 집으로 가는 길을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국가기관이 자국민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이지만,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이 공무원에게서 소명감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실미도'나 '도가니'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관람 후 시민들의 깨어 있는 액션이 더욱 기대된다.
 
부조리한 현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통을 접하면서, 필자는 무엇보다 목사와 신학자로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교회와 신학은 마치 외교통상부나 외국주재 한국대사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그렇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들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 교회와 신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가르치고 지도하며 양육해야 하는 것이 목사와 신학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혹시 그들이 본향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을 돌아보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주의 일이라는 미명하에 '목사로서 하는 일'에만 관심을 둔 것은 아닐까? 잘못된 신학으로 본향으로 가려는 성도들을 먼 우회로로 아니 막다른 길로 아니 벼랑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 문제를 넘어서 교회와 신학이 무엇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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