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사역 '거리의천사'

[ 교계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12월 13일(금) 14:16
"어서 추운 지하철 벗어나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미소지을 수 있길"
마음 담은 따뜻한 밥 한끼 건네며 기도하는 자원봉사자들
가슴 덥힌 노숙인들 두고온 자녀 생각에 눈물
 
   

지난 11일 밤 10시가 되자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노숙인 사역시설 '거리의 천사들' 사무실에 봉사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취업인들은 연말 결산에, 대학생들은 기말고사로 바쁜 탓인지 쌩쌩한 '청춘'들의 얼굴에도 피로감이 역력했다. 지난 11일은 본교단 소속의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시무)와 거룩한빛광성교회(정성진 목사 시무)의 청년들이 봉사를 하는 날이다(매주 목요일 봉사). 10시 40분 정도가 되자 15명 정도의 봉사자들이 찾아 금방 사무실이 비좁아졌다.
 
"내일이 기말고사인데도 꼭 와보고 싶어서 봉사에 참가했다"는 대학교 4학년 서민지 씨(거룩한빛광성교회)는 오늘이 노숙인 봉사를 하는 첫 날. 그녀는 "교회 청년부 예배 광고를 보고 봉사 지원을 했는데 공교롭게 시험 전날로 봉사 일자가 배정됐다"며, "시험 전이긴 하지만 마음 정했을 때 와서 봉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왔다"고 이날 봉사에 참가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민지 씨는 같은 학교 기독교 동아리의 오빠 김민석 씨(25)에게까지 동참을 권해 함께 동행을 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몸과 마음이 분주한 심규찬 씨(35)도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봉사에 참여했다. "결혼하게 될 자매의 권유로 2년 전 처음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규찬 씨는 "결혼하면 한 동안 봉사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왠지 마음이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에는 특별히 6년 전 노숙의 경험을 한 바 있는 김영선 씨도 봉사에 참여해 과거 자신이 처했던 상황에 똑같이 처해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11시경까지 윤건 총무의 인사와 이장성 팀장의 진행으로 봉사자들 소개와 기도, 찬양을 마치고 주의사항을 전달한 뒤 현장으로 출동. 봉사 코스는 지하철역 '시청-을지로3가-을지로입구-종각'순이다.
 
시청역에 도착하면서 봉사자들은 밝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밥과 국을 건넸다. 봉사 현장에서는 신참과 고참의 차이가 확연히 구별된다. 봉사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은 애써 웃음 짓는, 어색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몇 년이 넘은 베테랑 봉사자들은 이미 노숙인들과 개인적인 관계도 맺어져 밝고 자연스러게 이들과 사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띠는 봉사자는 명성교회 청년부 공지혜 씨(33)였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높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지혜 씨는 배식 봉사를 하면서 노숙인 한명 한명에게 눈을 맞추며 미소를 띤 채 반가운 인사를 했다.
 
한 노숙인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농담하자, 지혜 씨는 "처음에 뵈었을 때는 예쁘다고 칭찬해주시더니 이제는 할머니라고 부른다"며 계속 되는 아저씨의 농담을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다음 봉사 지역인 을지로3가 역에서도 지혜 씨의 활약은 계속됐다. 한 노숙인은 "올해 다 가는데 좋은 소식(결혼) 없는거니?"라고 묻자 지혜 씨는 "아저씨가 기도를 해주셔야 제가 시집을 가죠"라고 눙친다. 배식이 끝난 후에도 둘은 한참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혜 씨에게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진 비결에 대해 물었다.
 
"처음 저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갈등이 많았어요. 무섭기도 하고 큰 일 당할 것 같기도 했죠. 그래서 봉사하기로 마음 먹고도 1~2년 동안은 생각만 했을 뿐 직접 봉사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왔는데 기우였음을 깨달았죠. 이분들은 그냥 편한, 조금은 더러운(?) 옆집 아저씨들이에요. 초창기 봉사할 때 아저씨들이 저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셨어요. 자기 딸 생각이 난다면서요. 제가 아저씨들에게 해드린 것보다 오히려 아저씨들이 저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어요. 아무 것도 없이 길거리에 내몰렸는데도 작은 봉사를 한다는 이유로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쌀밥과 김칫국으로 배를 채우고, 사역자들과 봉사자들의 진심 어린 사랑으로 가슴을 덥힌 노숙인들은 오늘도 춥디 추운 겨울밤을 견디기 위해 다시 지하철역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며 '거리의 천사들' 윤건 총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밥을 드리는 일은 참 쉬워요. 그 안에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게 어렵지. 내년 성탄에는 노숙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집에 앉아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걸 담아 드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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