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기 가득한 쪽방촌 독거노인 75세 윤순덕 할머니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3년 12월 13일(금) 13:40
빚더미에 앉은 아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혜택서 제외
디스크로 인해 잡일도 못하는 형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영일시장을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허름한 쪽방촌이 나왔다. 성인 한 명이 겨우 통과할만한 골목 중간에 윤순덕(75세, 하나교회 집사) 할머니가 살고 있다.
 
드라마 제목이기도 했던 '한지붕 세가족'. 윤 할머니의 집은 셋으로 나눠져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찬물에 빨래를 하던 윤 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영등포노회 영문교회(장원재 목사 시무) 부교역자가 마침 쌀을 전달하기 위해 찾았다. 영문교회는 매년 겨울마다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찾아 쌀을 전하고 있다.
 
허리를 굽혀 할머니의 방에 들어섰다. 영문교회 임한열 부목사와 기자가 앉자 할머니의 방은 꽉 찼다.
 
방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방이 좁고 외풍이 심한데다가 방바닥마저 냉골이었다. 할머니는 "보일러가 2년 전에 고장났는데, 수리비도 없을 뿐더러 고친다해도 석유값이 비싸 그냥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건 낡은 1인용 전기방석 뿐. 그마저도 할머니는 손님이라고 기자에게 건넸다. 혼자 살아 말벗이 그리웠는지 이내 사는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12년 전에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했어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둘은 사고로 죽고 남은 아들 하나마저 사기를 당하고 보증을 잘못서 빚더미에 앉았어요. 그 아들은 빚을 갚느라 바쁘게 돌아다니고 저는 이렇게 혼자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혼자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다만 병원 치료비가 비교적 저렴할 뿐이다. 철저하게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허리와 목 디스크에 뇌혈관이 좁아지는 증세까지 생겨 푼돈이라도 만질 수 있는 잡일마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교회나 사회복지 기관에서 생필품을 갖다주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윤 할머니는 "이 동네에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도 있다"며, "솔직히 하나님 계시니까 내가 살아간다. 교회 다니니까 아들 둘을 갑작스럽게 잃고도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생의 마지막에 영접하기는 했지만 생전 돈도 벌지 않고 술에 찌들어 살았어요.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죠. 하지만 희망을 갖고 살았던 것은 아들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어이없게도 두 명이 한꺼번에 죽었어요."
 
윤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새벽기도 다녀오고 밥 먹고, 성경 읽고, 골목 한번 돌고(혹은 병원 다녀오고), 다시 성경을 읽다 잠이 든다. 끼니는 대부분 밥을 물에 말아 김치하고 먹는게 전부다.
 
윤 할머니는 교회 가는게 그렇게 즐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교회에 가면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기 때문이란다.
 
요즘에는 재개발 문제로 언제 길거리에 내몰릴지 몰라 불안한 마음 안정시키고자 기도에 더욱 열심이다. 살고 있는 곳이 시유지라 소유권 행사가 어렵다.
 
방문을 나서는데 할머니는 "고맙다"며 유리병에 담긴 두유를 건넸다. 어디에서 선물 받은 두유를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품속에 따뜻하게 덥혀놓았다가 꺼냈다.
 
무엇이 고마웠을까? 말을 들어줘서일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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