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셨는가?

[ 생명의양식(설교) ] 생명의양식

정영택 목사
2013년 12월 11일(수) 11:05

▶본문말씀 :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은 같은 장 37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영광의 자리를 구하는 일에 대하여, 41절에서 열 제자가 매우 분개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주신 교훈입니다. 그 핵심은, 사람들은 크고자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고, 휘두르려고 하는데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작아져야 하고, 나중이 되어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첫째, 예수님의 오심은 "섬기려는 것"이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삶의 동기, 목적은 섬김이지 절대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먼저 회개로 응답해야 됩니다. 옛날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깊이 있게 듣지 못하고, 말씀의 감동을 받지 못했음과, 개인적인 영광의 자리를 생각하고, 탐하고, 가지려고 했던 것과, 세속적인 경쟁 속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섬김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가는 것인가에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 역시 먼저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이며, 나중이며, 작은 자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 위에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는 의지,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속물은 "값을 대신 치러주고 사로 잡힌 데서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을 풀어준 것이며, 빚을 탕감 받게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목숨을 값으로 하여 상대를 풀어지게 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목숨을 담보로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죄, 사망, 율법에서 우리를 풀어 자유를 가진,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도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를 더 깊이 묵상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대로 "생명을 바쳐 섬기기"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발을 씻기시고,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먹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완전한 사랑의 섬김을 나타내시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하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의 삶에 동기와 목표를 '섬김'에 두어야 하며 '목숨을 담보하는' 결단과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영생을 구하러 왔던 젊은 관원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 앞에 슬픈 기색을 갖고 맥없이 돌아서버렸습니다.
 
섬김 없는 예배, 섬김 없는 제자, 섬김 없는 그리스도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섬김으로 나의 삶의 목표, 목회의 목표를 새롭게 해서 사랑으로 섬기며 구원의 길을 열어가는 건강한 부흥을 이루게 하는 역사를 일으킵시다.

정영택 목사 / 부총회장ㆍ경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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