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9~1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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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05일(목) 10:45

월-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본문 : 창15:6-7
찬송 : 545장
 
사도 바울의 구원관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성경의 구원관을 드러내고 밝혀낸 것이지 바울의 구원관은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조상들도 누구나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고 구약성경을 인용한 것을 확인해 주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성경대로 믿음으로만 얻게 된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대상은 누구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 바로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것이다. 자칫 기독교가 다신론적이지 않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을 믿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를 들면 필자는 성도들에겐 목회자이다. 그러나 아내에겐 남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아버지가 된다. 목회자, 남편, 아버지, 역할은 다르지만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기능과 역할이 대상에 따라 다를 뿐이지 하나의 인격, 하나의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성경은 그 하나님을 예수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성경은 그 하나님을 성령님으로 부른 것이다. 고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4:13)"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 또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고,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게 된다.
 
대강절을 맞이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는 절기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성령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서 주님과 교제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주님! 대강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주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사 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무일 목사/삼천포제일교회


화-나의 브니엘은 어디인가?
본문 : 창 32 : 30-31
찬송가 : 338장
 
야곱은 젊은시절 장자의 상속권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후 아버지의 노여움과 형의 증오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친다. 삼촌의 집에서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움과 함께 몰려오는 공허감으로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20년간 돌봐준 외삼촌에게 감사의 인사도 한마디 없이 '가만히' 도망쳤다. 야곱은 늘 이런 식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야곱은 곧 만나게 될 형의 복수가 두려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형에게 줄 선물을 자기보다 앞서 보낸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형을 만나야 하는 전날 밤 그는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놓고 하나님과 마주앉았다. 어찌나 울면서 매달렸던지 천사가 그의 엉덩이뼈를 슬쩍 치셨다. 엉덩이뼈가 부러진 그는 그래도 놓지 않고 새벽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다. 결국 하나님이 만나주셨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절망적인 문제 앞에 놓이게 된다. 그때는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고독한 밤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야곱과 씨름하던 사람이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야곱입니다.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남의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본질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바닥에 놓이면 먼저 겸손해진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옛 모습을 청산하고 변화받고 새로워지기를 원하신다. 브니엘은 그의 다리가 위골되는 고통의 장소였지만, 이제 그곳은 축복의 미래를 약속 받은 은총의 장소가 되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욕심과 분쟁이 물러가고, 화해와 소망의 찬란한 해가 떠올랐다. 변화의 기적이 일어난 다음 날, 야곱은 가족보다 앞장서서 간다. 그들 앞에서 종이 주인에게 하듯이 수없이 몸을 땅으로 굽실거리고, 절뚝거리며 형을 향해 나아간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형의 눈에 수 십년 쌓였던 원한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형제의 사랑이 불일듯 일어나서 달려가 목을 안고, 입 맞추며 서로 통곡하고, 울게 된다. 밤새워 부르짖은 기도로 태산같은 증오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화해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시간 나의 브니엘은 어디인가? 내 아집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어져서 변화되는 은총의 자리브니엘은 어디인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2014년을 온맘 다해 열심을 다 해야할 그 자리가 우리의 브니엘인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 나의 브니엘됨을 기억하고 이전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정숙 목사/수계교회


수-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본문: 렘 32:6-15
찬송가: 406장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과 맞으면 순종하기 쉽지만, 전혀 맞지 않으면 순종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나라의 앞날이 풍전등화와 같은 전시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땅을 사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친척 하나멜이 땅을 팔러 오면, 너는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시에 땅을 사라면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록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한다.
 
하나님께서 전쟁 중에 '아나돗에 땅을 사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은, 나라가 망해도 미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일종의 '상징행위'였다.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망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장차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희망을 갖고 살아라, 절망 가운데 소망을 가지라,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바로 '아나돗에 밭을 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였다(15절).
 
우리 삶에서 아무리 상황이 막막하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이 비치게 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움직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인다. 전자는 상황이 어려우면 낙심하고 절망하지만, 후자는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과 용기를 가시고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이면 행동한다. 사도 바울은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자원하여 풍성한 연보를 드린 마게도냐 교회를 자랑했다(고후 8:1~5). 그들처럼 우리도 형편에 상관없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우리는 갖가지 형편과 상황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 삶 속에서도, 주께서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어 이 형편과 상황 너머에 있는 영원한 진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시각장애인의 눈을 열어주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명형 목사/속초만천교회


목- 450년만에 이루어진 요셉의 꿈
본문 : 창 50 : 22-26
찬송가 : 490장
 
요셉은 가족들 모두가 요셉 앞에 절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애굽의 왕 바로(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된다. 얼마 후, 가뭄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애굽으로 와서 요셉을 만난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애굽으로 올라와 모두 요셉 앞에 절하게 된다.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더이다"라는 요셉의 이 꿈이 이루어집니다. 17세때 팔려 간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고 7년 풍년 후 2년 흉년째이니 요셉의 나이는 39세이다. 이 꿈은 22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의 꿈은 39세에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22절에 요셉이 110세를 살았다고 말한다. 꿈이 이루어지고 71년을 더 살게 된다. 그렇다면 요셉의 남은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무슨 꿈을 꾸며 살아야 할까?
 
우리는 요셉의 꿈이 총리가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셉의 궁극적 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실현은 아브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보는 것이었다.
 
성경은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꾸고 있었던 참된 꿈이 있음을 말해 준다. 그것은 24절, 2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저는 이제 죽지만, 여러분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떠나는 날이 반드시 올텐데 그 때 내 해골을 매고 올라가 그 땅에 나를 묻어 주십시오."
 
그가 마지막까지 보기 원했던 것은 가나안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그 땅에서 살길 원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요셉의 믿음을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성경은 '믿음으로 요셉은 총리가 될 것을 꿈꾸었으며'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다. 그의 궁극적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450년이 지난 어느 날, 여호수아 24장 32절에 이 일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오늘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땅의 것과 성공만을 꿈꾸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이루시려는 꿈을 바라보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시고 계심을 바라보라.
 
<오늘의 기도>
우리 안에서 꿈을 꾸시고 그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인창 목사/분당남부교회


금-합심기도는 응답입니다.
본문 : 마 18 : 18-20
찬송 : 368장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란 말이 있다. 아무리 가벼운 종이라도 서로가 힘을 합하여 든다면 가볍다는 말이며 합력하여 일을 하면 더 쉽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시되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인지 땅에서도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주신 천국열쇠 외에 또 하나의 천국열쇠가 주어진 것이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된다. 모세는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에게 명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사람을 택하여 내일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하며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들고 전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한다.
 
모세가 기도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실로 어려운 전쟁이었다. 이 모습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의 아래에 돌을 가져다 놓아 그 위에 앉게 하고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기도손을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붙들어 올렸다. 여호수아가 그 군사들과 함께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되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완전 승리하였으며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였다.
 
모세의 출애굽사역에 도움을 준 아론과 훌은 빛나는 승리의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크게 축복하셨다.
 
아론의 이름의 뜻은 '고상하다'이다. 모세의 형이었지만 지도자 된 모세를 도왔을 때 그의 후손은 대대로 제사장 족속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고상한 명문 가문이 되었던 것이다.
 
훌의 이름의 뜻은 '고귀하다, 빛나다'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성막을 건축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하나님은 주의 종을 잘 보필하는 가정을 명문 가문으로 길이길이 축복하신다. 다시 한번 조국의 교회가 합심의 기도를 통하여 부흥의 역사가 이뤄지며 가나안을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기를 중심으로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우리의 합심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의 종과 중직자가 합심하여 기도케 하소서! 부부가 합심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이 땅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며 새로운 부흥으로 제단 제단마다 기름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중관 목사/샘물교회


토-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
본문 : 고후 5:17
찬송가 : 436장
 
어려서부터 교회를 잘 다니던 처녀가 동무들과 함께 정월초하루날 동내 사주보는 할아버지에게 재미삼아 사주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너는 팔자가 사납겠다"라고 말했다. 이 처녀는 그 할아버지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게 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서 집사님이 되었다.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장례를 다 마친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니 '정말 나는 팔자가 사나운가봐, 수십 년 전 고향 할아버지가 사주를 보니 팔자가 사납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가봐'라고 생각하며 집안 내력을 더듬어 보니 할머니도 과부로 살다 돌아가셨고 엄마도 일찍 청상과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팔자가 그렇게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여집사님은 언제 보아도 우울해 보였고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어느 날 상담을 청해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말해준 사나운 팔자를 믿고 있었다. 필자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여 소개하고 설명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팔자라 이전 팔자는 지나갔으니 보라 새 팔자가 되었도다." 그날 이후 집사님은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영원히 잘 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지음을 받았다. 영생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유복(有福)한 운명과 팔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안 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박복(薄福)한 팔자와 운명으로 전락해버렸다.
 
아담과 하와의 피를 이어받은 모든 인간은 박복한 운명과 기구한 팔자로 태어난다. 엡 2:3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 했고, 롬 3:10는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순간 불운한 운명이 행복한 운명으로 바뀌고 기구한 팔자가 좋은 팔자로 변하는 것이다. 저주받을 사람이 복 받을 사람으로, 지옥 갈 팔자가 천국 갈 팔자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안 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잘 될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서 옛 사람은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운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죄 값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내 운명과 팔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 될 수밖에 없는 운명과 팔자로 바뀐 사실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두만 목사/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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