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봄날을 꿈꾸며

[ NGO칼럼 ] NGO칼럼

정태효 목사
2013년 12월 04일(수) 16:54

'왜 남성쉼터는 있고 여성쉼터는 없지?'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15년전 쉼터 사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 초창기는 50~60대가 많았는데, 간질로 아퍼서 금식을 하다가 한번에 무리하게 식사를 하길래 천천히 드시길 권하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며 큰소리를 치는 분,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지만 함께 나온 딸의 비행을 통제하기 힘들어 다시 집으로 돌아간 분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한 번은 정신보건법이 바뀌어 병원을 나오게 된 가족도 없는 분들을 받았는데 지금도 당시에 그룹홈으로 연계해 준 필자를 기억하며 보고 싶다고 사무실에 들리기도 한다.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해 결국 다시 병원으로 돌려보낸 분도 있었다. 돌아보면 지난 15년 동안 엄마들의 자활과 자립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위해 땀흘렸고 헌신했다. 때론 글을 모르는 분들에게 독선생를 두어 글을 배우게 했고, 문화 교실을 열어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했다. 또 보건복지부를 통한 자활사업에 힘쓰면서 초반엔 여성쉼터들을 모아 프로그램도 가졌고, 체육대회를 비롯해 부활절연합예배, 고난받는자와 함께 드리는 성탄예배, 여름 가족 수련회,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성동 지역 통일한마당 등 많은 자리에서 온정을 나눴다. 그러는 동안 쉼터의 엄마들과 아이들이 서서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특별하게 서울시 자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극치료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곳을 거쳐갔던 엄마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고, 마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홈리스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쉼터 가족들의 자활 이야기를 글로 써보게 하자는 의견을 내놓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자 마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그 동안 살아 온 삶의 애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나 하나 읽어 보면 그들의 삶에도 봄날은 있었다. 그리고 이제 발돋움하며 새로운 봄날을 꿈꾸는 엄마들도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처음엔 여고생이었던 아이들이 결혼을 하기도 했고, 이곳에서 백일잔치와 돌잔치를 한 경우도 무척 많았다. 어떤 엄마와 아이들은 처음으로 이곳에서 생일파티를 하며 이웃의 사랑과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후원자가 없어 결국 일반 고등학교로 옮기기도 했다. 자퇴하겠다는 아이를 끝까지 설득해 졸업하게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필자는 비슷한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쉼터에 온 분들은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고 온 분들이기에 이 분들의 삶을 존중하며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수동에서 지역선교를 감당해 온 지난 역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시간이었다. 꿈꾸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는 노숙인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전개할 생각이다. 우린 내일의집이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독립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아낸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통합복지를 통해 엄마들의 삶을 좀더 업그레이드하는 미래를 꿈꿔본다. 그야말로 엄마들이 과거의 봄날을 기억하며 새로운 봄날을 꿈꾸듯이 우리 내일의집도 새로운 봄날을 꿈꾸며 기도할 것이다. 그 동안 마음을 보탰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정태효 목사 /내일의집 원장ㆍ성수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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