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넘어서자

[ 선교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12월 02일(월) 09:36
포스트 WCC 부산총회, 한국교회에 남겨진 과제를 생각한다 1.

進ㆍ保, 서로에겐 다른 하나님?
세계교회가 먼저 '화합' 주문하는 형편
 
WCC 부산총회 기간 중 총회가 열린 해운대 벡스코 주변에서는 연일 WCC를 반대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들이 들고 나온 피켓의 내용은 지나는 이들을 불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WCC는 사탄', '지옥에나 가라', '예수 믿고 천당 가자' 등 근거도 없고 원색적이면서도 비난 일색인 주장들로 인해 일부 외국인 참가자들이 WCC 본부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A)를 대표해 주제회의에서 인사한 신학위원장 토마스 슈마허 박사가 "이런 수준의 반대시위에 한기총이 관여했다는 증거가 포착되면 2014년 WEA 총회 한국 개최와 관련해 심각한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곧바로 철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원색적인 구호로 WCC를 비난하는 일이 왜 유독 한국에서 기승인 것일까. 여기에는 뿌리 깊은 진보와 보수교회의 갈등이 그대로 투영됐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진보와 보수의 현 주소를 드러낸 WCC 부산총회, 이를 기점으로 양측의 화합이 당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진영 갈등, 민낯이 드러나다

WCC 부산총회 반대시위를 두고 몇몇 외국인 참가자들은 '다양한 의견 표출'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벡스코 주변에서 벌어진 '반대시위'는 한국교회의 다이나믹스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컸고, 단순한 갈등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도 깊었다. WCC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원색적인 비난이 터져 나온 것은 결국 한국교회의 진영논리가 얼마나 큰 증오와 아픔을 쌓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1953년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으로 예장과 기장의 분열, 또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본교단과 합동 총회로 분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성격의 진영을 형성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교회가 극명하게 양분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보수권을 대표하는 교회 연합기관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출범하면서 기독교 사회운동을 주도해왔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대립과 화합을 오가며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급격한 쇠락으로 유명무실해 지고, 이 때에 맞춰 출범한 WCC 총회 준비위원회와 이를 반대하는 교단들의 갈등구도로 재편되고 말았다. 이런 갈등구조가 고착화된다면 한국교회는 제2의 부흥과 같은 새로운 비전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고 싸움만 반복하고 말 수도 있다.
 
WCC 부산총회 참석을 위해 앙골라에서 왔던 셀레스티노 칸관다 씨는 "오랜 내전을 경험한 앙골라인들은 화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산다"면서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비난을 퍼붓는 모습이 무척 이상하고 왜 서로를 배우려 하지 않는지도 궁금하다"며 화합을 주문했다. 이 말에 해답이 있다. 화합이라는 목표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 과정,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해 왔던 양 진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그 출발이야말로 한국교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만 하는 숙제이다.
 
▲'WCC 반대, WEA 찬성?', 이중성의 한계
 
한국교회는 2014년, 또 다른 국제회의를 앞두고 있다. 바로 내년 10월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인 WEA 총회다. 하지만 WEA 총회를 유치한 곳은 한기총으로 마치 WCC 총회와 WEA 총회가 맞서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 사정일 뿐이다. 국제 무대에서 WCC와 WEA는 선교를 위해서는 하나다.
 
부산총회에도 WEA 관계자들이 참석해 주제회의에서 인사했으며, 여러 회의에 참석해 공동의 선교를 향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부산총회를 통해 WEA가 한기총 보다는 WCC와 정신적으로 훨씬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WCC는 1997년 '공동의 증언을 향하여'(Towards common witness)라는 문서를 통해 "가톨릭과 정교회를 비롯해 이미 기독교 신앙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개종의 문제가 교회들을 분열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라고 경계한 바 있다. 당시 문서에서는 '자기 교회'만 진정한 교회이고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미 기독교 신앙이 있는 이들을 재세례하는 행위를 비롯해서 기존 교인을 물질과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하며 유인하는 행위들이 개종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WCC의 개종전도 금지주의는 2011년 WCC와 WEA, 로마교황청이 공동으로 만든 선교문서인 '전 세계 다종교 속에서의 기독교인의 증언'(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선교문서에서 WCC와 WEA, 로마교황청은 "기독교인들은 누군가의 종교를 바꾸는 것이 적절한 반응과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동반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반드시 개인(전도 대상자)의 완벽한 자유의지 속에서 진행되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는 한기총이 WEA와 어떤 협력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WCC를 반대하고 WEA는 찬성하는 이들의 한계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WEA 총회를 유치한 한기총도 WEA나 WCC가 어떤 선교학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고 WCC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혹은 비판할 부분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WEA 총회를 한국에서 유치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컬한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서로가 입보다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
 
WCC 총회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마련한 종교 간 대화 심포지엄에서 나온 발제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심포지엄은 보수적 성향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 간 대화를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김동춘 교수는 종교 간 대화에 앞서 보수와 진보 기독교가 먼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보수 기독교는 종교 간 대화 자체를 터부시 하고 있고 반면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는 보수 기독교를 진지하게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보수 기독교를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보수 기독교도 보다 유연한 방식의 선교를 위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바로 한국교회는 진보냐, 보수냐로 선을 긋고 대립하지 말고 대화하고 배워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입보다는 귀를 먼저 열고 상대를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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