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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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8일(목) 15:30

월-예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라
본문 : 고전 1:4~9
찬송가 : 176장
 
'미래학(Futurology)'이라는 학문이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그리고 현재로부터 다시 미래를 생각하는 학문이다. 신학에도 미래학과 비슷한 학문이 있다. '종말론'(Eschatology)이다. 종말론은 현재로부터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로부터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른 신앙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다림이 세상에서 말하는 기다림과 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막연하게 기다리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한 미래를 기다린다. 확실한 미래, 이미 완성된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 미래에 대해서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 바로 그것이 지혜요,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살았다. '마라나 타'라는 말이 있다. '주께서 임하신다', 또는 '우리들의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뜻의 이 말은 초대교회에서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기도 문구로 사용된 말이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하반절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로 끝나는데, 바로 이 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이 아람어로 '마라나 타'이다. 이 말은 계시록 22장 20절 끝에도 기록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렸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말이기도 하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를 정의하면서 성도란 첫째,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둘째, '주 예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고 정의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려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유무상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주님을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전도와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통해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봉사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돕고 봉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우리가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린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주님이 곧 나타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즉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기 위해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봉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한 목사/호산나교회

 


 

화-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본문 : 고전 14:15
찬송가 : 279장
 
요한계시록 8장 3절을 보면 "기도가 금향로에 담겨서 향연과 함께 천사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더라"고 한다. 기도 외에 다른 무엇이 금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가장 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향연과 함께 금향로에 담겨서 올라가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을 주신다. 이런 기도를 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한다"고 하였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가 될 것이다. 지금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진실한 마음, 즉 뜨겁고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마음(사 4:31), 하나님께 부르짖는 마음(렘 33:3).이런 마음으로 하는 기도다.
 
히 10:22절에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했으니 참되고 참된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그러면 영으로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영으로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영으로 하는 기도를 하게 될 때 확실한 성도가 될 수 있다.
 
영으로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롬 8:9을 보면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고 한다.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 말씀을 주신다.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은 기도할 때 크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깊은 기도를 하게 하신다. 평소에 생각해보지도 못한 기도를 하게 하신다. 정말 성령에 감동되어 영으로 하는 기도가 곧 믿음의 기도이고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경건한 사람  고넬료는 영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행10:3). 바울이 밤에 기도했더니 주께서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하셨다. 바울의 기도는 곧 주님과의 교제였다. 영으로 기도하니 신령한 일들을 경험하고 확신에 들어간다.
 
<오늘의 기도>
주여 기도보다 더 귀한 것은 없사오니 마음과 뜻을 다하여 기도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한 목사/주사랑교회

 


 

수-주님의 제자가 되는 비결
본문 : 눅 14 : 25-35
찬송가 : 391장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따르는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반복되어 나오는 문장이 있다.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세 가지 비결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 '미워하다'에 사용된 헬라어 '미세오'는 다른 것과 비교해서 '덜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므로 '미워하라'는 말씀은 다른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의 우선 순위가 바뀌게 된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다 보니 세상의 다른 것들이 시시해지고, 덜 중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내 십자가는 이리 무겁고 힘든가. 다른 사람은 참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멀리서 보면 다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것 같지만 조금만 가까이 가서 보면 다 자기 십자가가 있다. 가정마다 심방을 해 보면 기도의 제목이 없는 가정이 없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내 십자가와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든, 나는 내 십자가를 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나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자
 
셋째,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을 주신다. 망대 짓는 자와 전쟁하는 자의 교훈이다. 망대 짓는 자가 무조건 망대를 세우기만 하려다가는 기초만 쌓고, 다 세우지 못할 수 있다. 망대 짓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앉아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망대를 짓든지, 전쟁을 벌이든지 앉아서 헤아려 보는 것이 없으면 실패하고 만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헤아림'은 바로 기도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헤아리고, 자신의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남은 날들을 참으로 유익한 날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루 하루 인생의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언제나 주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곽철희 목사/청안교회

 


 

목-감사로 드리는 제사
본문 : 시 50:23
찬송가 : 343장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그림 가운데 '만종'이라는 명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가 서쪽으로 질 무렵, 저 멀리 교회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밖에서 일하던 젊은 부부는 종소리를 들으며 경건하게 마주서서 두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의 그림이다.
 
만종이라는 이 그림의 본래 이름은 '알젤루스'인데 그 뜻은 '기도'이다.
 
밀레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극한 가난 속에서 고생하던 때였다. 그는 비교적 넉넉한 환경 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20살 때 부친이 별세하면서 계속해서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갓 결혼한 아내마저 병으로 사별해야 했고, 50세가 넘어서까지 가난 속에서 고통을 당했으며, 그 후에 자신조차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60세의 일기로 짧은 생을 마치게 되었다.
 
그래서 밀레의 역작들은 고통의 세월을 지내는 중에 그려진 것들이 많다. 감자 몇 개를 담은 바구니를 옆에 두고 두 손을 모아 주님께 감사하는 농부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는 우리들의 삶을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여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다.
 
농사는 농부가 짓지만 농부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농사가 잘 될 수 있을까? 햇빛이 없어도 농사를 절대 지을 수 없다. 공기가 없이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것, 절대적인 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값없이 그냥 주신 은혜이다. 은혜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감사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지난 날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셋째, 미래를 바라보며 감사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다.
 
감사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가 바르고 아름답게 되어 복된 삶을 살게 된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늘 공급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원망하고 불만족하기보다 이미 주신 것과 넘치는 것들을 세어보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하사 항상 감사한 가운데 기도하고,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종준 목사/동암교회

 


 

금-깨어있어라
본문 : 마 24:36-44
찬송가 : 217장
 
교회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신앙공동체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다시 오시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씀을 한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일지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현대는 불안한 시대라고 한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고,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간 정치상황도 그렇고, 사회 경제며, 자연의 변화도 그렇다. 예측한다 하더라도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최근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북한과 휴전 상태인 한반도는 국내외적 변수가 많아서 더욱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불안하면 더욱 재촉하게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다급하게 대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게 된다. 불안해서 움직이고, 분주해지다보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심리의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불안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하지 않던가. 방송매체에서 하루 종일 보험광고가 대세인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현대인들이다.
 
그러나 성서를 읽어보면 급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멈춰 서는 것을 배우게 된다. 오늘 본문은 아주 급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지만 그 날과 그 시각은 모른 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준비는 깨어 있는 것이다. 이 준비는 부지런을 떨며 뭔가를 하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하던 일을 멈추고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며 고요해지는 것을 말한다. 고요한 중에 자신이 하나님의 평화를 사모하는 지, 가난한 자가 평화로이 살도록 평화를 위해 일하며 애통하는 삶인지, 이런 삶으로 인해 모욕을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받고 있는지(마5:3-11)를 성찰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욕망에 쉽게 동화되고 따라가게 된다. 세상이 제시하는 목표가 교회의 목표인 양 착각하게 되면 성서가 말하는 삶과는 다른 길로 가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다고 성서는 말한다. 세상에 있으되, 주님 앞에 있어라. 먹고 마시고 밭을 갈고 맷돌을 돌리면서도 우리는 주님 앞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깨어 있는 것이다.
 
대림절에는 걸음을 멈추고 주님 앞에 머무는 것을 배우자. 그 앞에 머물러 있으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다.(사 2:3)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를 사모하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 대림절에 주님 앞에 머물러 있을 때 주님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금교 목사/누가교회

 


 

토-9회말 투아웃!
본문 : 창 41:55-42:2
찬송가 : 359장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의 인생은 '9회말 투아웃'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요셉이 어렸을 때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형들이 자기한테 절하는 꿈을 많이 꾸었다. 그래서 형들에게 미움 받아, 결국 형들 손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다. 그러니 요셉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다. 9회말 투아웃 같은 상황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머슴살이를 한다. 주인에게 인정받아 집안 살림을 다 맡아 보게 되었지만,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간통죄로 모함하여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죽은 목숨이다. 이제 곧 끝이다.
 
그런데 감옥에서 왕의 술을 관리했던 신하의 꿈 해몽을 잘 해 주었고, 요셉이 그의 꿈을 해몽한 대로 그 신하가 복직되었다. 복직되면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준다고 하더니 요셉을 까맣게 잊고 만다. 그러니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역시 9회말 투아웃 상황이다.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는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몽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복직된 신하가 요셉을 떠올렸다. 이 일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버지, 형제들과 극적 상봉을 하게 되고, 마침내 가족들 모두 애굽으로 들어와 살고, 번성하고, 후에 출애굽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를 이어가는 주인공들이 된다.
 
요셉이 '9회말 투아웃'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을 때, 창세기 39장 2, 3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창세기 39장 21, 23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마침내 형들과 극적인 상봉을 하는데, 창세기 45장 5, 8절에서 요셉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고,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늘 요셉과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케 하셨던 것이다. 어려운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자.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으로 나아가 마침내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치고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주인공이 되자.
 
<오늘의 기도>
9회말 투아웃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께 시선 고정시키고 믿음으로 나아가 마침내 홈런을 치고 위기상황 극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언구 목사/용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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