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씨 뿌리는 목회를 해야 할 때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은호 목사
2013년 11월 21일(목) 16:26

부끄럽지만, 지나온 목회를 돌아볼 때 남이 씨 뿌리고 물 준 곡식을 거두는 목회를 해온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통렬히 반성한다. 참 부끄럽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나 바울은 심은 자이고 아볼로는 물을 준 목회자라 했다.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 했다. 심는 자와 물 주는 자가 한가지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는다 했다. 바울이 말하는 심는 자와 물 주는 자,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균형(합당함, 악시오스; 천평칭의 좌우수평균형)이 있다. '심는 일'과 '물 주는 일'의 균형 말이다.
 
최근 몇 해의 목회를 돌아볼 때, 한 해 세례(입교)자가 평균 100여 명 정도였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믿음이 자라가는 순수 초신자들을 보는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목회의 수많은 거둠에는 심지 않고 물 주지 않은 거둠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목회라는 것이 '지역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선교지의 여러 교회들, 형제교회들, 개척교회들 속에서도 심는 일, 물 주는 일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지역교회'인 본교회가 직접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심고 물 주는 일에는 너무 소홀했음을 통렬히 반성한다.
 
한국교회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하던 교회였다. 그러다보니 목회가 성장의 관성(慣性)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물을 뽑아 먹을 줄만 알았지, 광야에 나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복음의 씨를 직접 심는 일에는, 너무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도를 부르짖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주의의 탐욕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의 토양을 더욱 황폐화시켜 아예 새 곡식이 자라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정말 단 한 번이라도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하신 예수님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기껏해야 새 예배당 지어, 시류를 좇아 해매는 이들의 구미(口味)에 맞추려는 응답이 우리의 애씀 아니었던가? 남이 심고 물 주어 길러 놓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았던가? 예수님 말씀대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그 기쁨을 구하여 왔던가?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두는 것은 창조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이치이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그 균형이 깨어져 있다는 말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하나님 말씀 붙잡고 본토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처절한 그 삶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갔던 그 절절한 씨 뿌림의 '그 눈물'을 잃어버렸다. 농사일이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당장 씨 뿌리고 나면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그 소중한 한 톨의 씨앗을 가지고 나가 옥토(沃土)에 뿌리는 그 심정,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남이 심고 물 주어 다 자란 곡식을 거두며 기뻐할 시기는 벌써 지났다. 이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우리 자손들이 예수님 믿을 때의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자. 다시!

박은호 목사 / 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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