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벌써 끝났다고?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조인서 목사
2013년 11월 20일(수) 16:53

최근에 많은 목사들이 '2020, 2040 한국교회 미래 지도'라는 책에 대해 언급한다. 그만큼 많은 목회자가 읽었거나, 읽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래학자이며, 목사이기도 한 저자 최윤식은 한국교회에 대한 현실 진단과 미래 전망을 '한국 교회, 잔치는 끝났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겨우 130년이다. 이제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고 해도 부족할 판에 벌써 잔치가 끝났다고 하니 참으로 암담하다. 다 짐작하고 알고 있는 현실이었지만 단정적 표현으로 마주 대하니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더욱 옥죄어 와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최근 한국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현실과 맞물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책을 읽고 여기저기서 뜨겁게 토론하며, 암울한 미래를 어떻게 하든지 소망의 미래로 바꿀 수 있을지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몇몇 동료 목회자와 저녁 모임을 했다. 거기서도 어떤 목사는 이 책을 언급하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모든 목사들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품는다. 일견 맞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조금 현실성이 부족한 소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거기 함께 있던 목사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로라 하는 분들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과연 여기 있는 목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개혁에 앞장 설 수 있을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당시 가톨릭 지도자들에게는 부패한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한 사제나 지도자들이 없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바티칸에 빌붙어 살던 많은 추기경이나 주교들도 아마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개혁'을 성 바오로 성당의 종소리만큼이나 피맺힌 큰 소리로 외쳤을 가능성도 꽤 많다. 그런데 왜 가톨릭은 개혁을 못했고, 루터는 개혁을 했을까? 하나는 뼈를 깎는 심정만 가졌고, 다른 하나는 뼈를 깎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는 예배 시간에 앞에서 찬양 인도를 하는 눈에 띄게 예쁜 자매가 한 명 있다. 그 자매는 얼마 전까지 턱의 부정 교합으로 매우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서너 달 교회에서 안 보였다. 아마도 턱을 깎아내는 양악 수술을 했던 모양이다. 뼈를 깎는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교회에 다시 나타났을 때 얼굴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몸까지도 홀쭉해졌다. 평소에 나와 마주쳐도 웃지 않던 그 자매가 이제는 생글생글 눈웃음을 친다. 아마도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여성들이 치가 떨릴 만큼 고통스러워도 뼈를 깎는 성형 수술을 감내하는 것은 그 후에 얻는 것이 크기 때문이리라. 지금 한국 교회 내에 뼈를 깎는 아픔의 현장으로 내몰린 목사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당대에 엄청난 메가교회를 이룩하고 아들에게 대물림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내몰린 경우나 논문 파동으로 강남 한복판에 교회 신축을 하고도 반대에 부딪친 경우 등. 그렇게 아파도 뼈를 깎아야 한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는 안 된다. 뼈를 깎으면 나중에 자신 있게 웃을 수 있다.

조인서 목사 / 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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