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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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5일(금) 11:14

월-겉 불과 속 불
본문 : 딤후 1:6~8
찬송가 : 197장
 
우리 한국의 천만성도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 받아 천국가기 위함이다.
 
구원받아 천국 가는 일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확실하게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확실하게 구원에 들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예수님을 진심으로 주로 믿고 자기 안에 영접한 사람일 것이다. 고후 13:5을 보면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라 했다. 진실로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신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했다.
 
믿음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일은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내안에 성령이 임재해 계시느냐! 무엇을 보고 성령이 내안에 임재해 계심을 알 수 있을까?
 
불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보고서 알 수 있다. 마태복음 3장 11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다. 성령은 곧 불이다. 한국의 천만성도가 다 "주여!주여!"라고 외친다. 모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령으로 주시라 한다고 했으니 모든 성도는 다 불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 불을 받았으면 참 믿음을 갖고 있고 구원을 받은 것일까? 이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불을 받았지만 그 불이 겉 불이냐, 속 불이냐 이것으로 알 수 있다.
 
성령의 불에는 겉 불이 있고 속 불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미지근하기 때문에 즉 속 불이 없기 때문에 입에서 토해내 버리신다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는 드렸지만 속 불이 없어서 참으로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고 말았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형식과 겉모습이 전부였다. 속에 불이 없었다. 정말 내안에서 성령님이 역사함으로 내가 참 믿음을 갖고 있으면 내안에서 참 불이 타오른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불타오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불이 속 불이다. 내속에서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사람이 진정 믿는 사람이고 구원받은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의의 태양으로(말 4:2) 샛별로(벧후1:19) 불로(왕상 18:38)살아 계시고 역사하셔야 한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가 불을 받아 내 마음에 불이 타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여 이 땅에 성령의 불바람이 불게 해 주소서.내 심령이 봄 동산이 되게 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한 목사/주사랑교회


화-'기다림'속의 감사
본문 : 합 3:17~18
찬송가 : 591장
 
추수 감사주일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한다. 1620년 12월 11일 종교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승객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 동북해안에 있는 도시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첫 해를 보내며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02명 중 46명이 사망할 정도로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데 힘이 들었다. 첫 번째 수확은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수확이었지만, 청교도들의 첫 번째 추수감사예배는 유럽에서 그들이 누렸던 어떤 풍성한 때의 감사예배보다 더 감격스러운 예배 시간이었다.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며 우리가 드려야할 감사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현재 우리의 삶속에 감사드릴 이유가 많이 있어서가 아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바라볼 수 있기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감사는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을 이미 온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BC 600년 경 유다의 멸망이 눈 앞에 있을 때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유다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으며, 사회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해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은 고통 당하고,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잘 사는 모습을 보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드린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모습 앞에 낙심해 있는 하박국에게 이런 답을 주신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금방 포기하고 만다. 모든 것은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려면 어떤 나무는 50년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는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때가 있음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수년내에 부흥시켜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아직은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주신 것처럼 기다림 속에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다림 속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곽철희 목사/청안교회


수-달게 되었더라
본문 : 출 15:22~27
찬송가 : 359장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출애굽을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출발하였으나 그들 앞에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만난 시련은 홍해였다. 그리고 홍해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장애가 나타났다. 그 어디에서도 물을 찾을 수 없어 사흘 동안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했다.
 
사흘 동안 고생한 끝에 마라란 곳에 이르러서야 겨우 샘을 하나 발견했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는 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흥분했다. 감정이 폭발했다. 누군가의 선동으로 모두 모세에게 몰려가 항의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겨우 이 모양입니까?" "가나안은 고사하고 이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행렬처럼 모든 사람이 시작할 때는 기대와 감격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아 불평과 절망으로 바뀐다. 불과 사흘 전에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던 감격이 불평과 절망으로 변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절망의 샘에 이르게 되면 불평하고 원망하며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몰랐으나 마라의 쓴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진위를 확인하시려는 시험이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더 많은 시련을 이길 수 있는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은 있는지, 가나안 있는 이방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군대인지를 확인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절망의 광산에서 희망을 캐내려는 지도자가 있었다. 이 희망의 지도자는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떠 올렸다. 그가 위대한 신앙인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모두가 절망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칠이 영국인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은 것은 그가 탁월한 정치가여서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영국국민이 희망을 잃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라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시험을 치루는 시험장이다. 우리가 절망에 이르렀을 때, 그곳이 우리가 영원히 머물 최종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다. 마라의 쓴 물은 잠시 뿐이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달게 하셨고, 그들 앞에 열 두 샘물과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을 준비해 두셨다.
 
지금의 고난은 축복의 항구를 향해 가는 도중에 만난 폭풍일 뿐이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앞을 향해 나아가 "내 삶이 달게 되었더라"고 증거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고난의 장벽이 서있고 눈물이 앞을 가릴지라도 엘림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한 목사/호산나교회


목-불의한 청지기 이야기
본문 : 눅 16:1~13
찬송가 : 456장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비유의 내용들이 생활 중에서 보게 되는 것들이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일명 불의한 청기기라는 제목이 붙은 예수님의 비유이야기이다.
 
청지기 한 사람이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소문이 나고 말았다. 그 주인이 듣고 청지기를 불러 야단을 치고는 쫓아내겠다고 말했다. 청지기는 난감해져서 고민을 한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
 
그러다가 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4절에 보면,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해 놓아야지'라고 결심한다. 그리고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을 불러다가 그 빚을 뚝뚝 잘라 차용증을 새로 작성해 준다. 문제는 주인이 종의 이런 행동을 보고 슬기롭다고 칭찬해버린 바람에 이제는 우리가 난감해진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관심 있을 때 마음이 거기에 있다 한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의 마음은 늘 가난하고 병들고 무시 받는 변두리 사람들에게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힘들게 하는 세상의 부자와 권력자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가끔 그렇지 않은 부자와 권력자를 만나면 엄청 칭찬하신다)
 
청지기가 부자 주인 밑에서 일을 했지만, 막상 쫓겨 나오게 되니 자기도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과 어울려 살기로 작정하고 선심을 쓴 것이었다. 청지기처럼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아는 것이 삶에서도 첫걸음이지만 신앙에서도 첫째 자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이 신앙에서 첫 번째이며, 이런 자각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또한 첫 번째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돈과 권력은 소유의 세계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존재의 삶이다. 가진 것으로 자랑하지 못한다. 내가 누구를 마음에 담고 더불어 사느냐가 신앙인의 관건이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갖고 있는 소유물이 가난한 사람을 향해 쓰여서 힘든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얻고 살리는 데에 사용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우리를 소유가 아닌 친구로 대하신 까닭이다. 
 
<오늘의 기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어진 모든 재화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주님처럼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 사람을 향해 나누며 함께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금교 목사/누가교회



금-금쪽같은 내 새끼, 성전에 맡겨라
본문 : 삼상 1:26~28
찬송가 : 563장
 
오늘 본문 말씀은,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이 이야기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에게 부인이 둘 있었다. 하나는 한나요, 하나는 브닌나라는 여자인데,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브닌나가 한나가 아이 없는 것을 갖고 힘들게 했다. "너 하나님한테 벌 받아 애기 없는 거다"라고 빈정댔다. 남편 엘가나가 아기 없는 한나를 더 사랑했는데, 이로 인한 질투로 한나를 힘들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아들을 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으로 낳은 아들이 사무엘,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이다. 쉽게 말하면 '기도로 낳은 아들'이란 뜻이다. 그러니 한나에게 있어서 아들 사무엘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아이가 젖 뗄 무렵 한나는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가 엘리 제사장에게 맡긴다. "기도 응답으로 주신 아이니, 저도 이 아이 하나님께 드리되 평생을 드리겠습니다"라며 성전에, 하나님께 바쳤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관리하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가 사무엘을 부르셔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라게 되고, 마침내 엘리 제사장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되어 곧 이어질 왕정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로 쓰임 받는다. 실제적인 왕 역할, 또 선지자로 활동한 것이다. 모세와 더불어 '왕, 선지자, 제사장'의 삼중직을 수행하는 귀한 인물로 쓰임 받게 된다.
 
그렇다. 금쪽같은 내 새끼이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관리하게 해야 한다. 성전에 맡겨야 한다.
 
중학교만 가도 아이가 부모 말을 안 듣는다. 아이의 진로 또한 부모가 개입하기 어렵다. 내 아이가 어떤 것을 전공해야 할지 명쾌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 나도 내 아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아이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 아이를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이를 가장 잘 아신다. 마땅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관리하고 하나님께서 교육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을 맡은 곳이 성전이요, 교회학교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아이를 찾아가 말씀하신다. 그리고 필요한 훈련을 시켜, 지도력을 갖추게 하신다. 삼중직을 맡은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귀하게 쓰신다. 예수님 품에서, 예수님 축복 받으며 자란 아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심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금쪽같은 내 아이를 내가 키우고, 내가 조정하고, 내 욕심을 채우고, 내가 지배하려고 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언구 목사/용문교회


토-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본문 : 눅 12:16~21
찬송 : 526장
 
12장 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의 삶에 언젠가는 인생의 겨울이 올 것이므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의 전설에 보면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모두 죽였다고 한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점심 때는 두 다리로 걷고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답은 사람이다. 스핑크스가 답을 못 맞춘 사람을 죽인 것은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에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을 70으로 보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잠 자는 시간이 25년,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서 일에 얽매이는 시간이 많고, 먹는 일을 위한 시간이 3년, 차를 타고 보내는 시간이 2년,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1년이나 됐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20년뿐이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이것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복 있는 자리에 내 인생을 앉혀 주셨어도 귀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오늘 말씀에는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람은 한 마디로 돈을 위한 생각을 우선하여 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부터 저녁 잠들기까지 그의 생각을 주관하는 첫 번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였다. 염려도 오직 어떻게 하면 더 소유를 늘릴까 였다. 이 사람은 오직 생의 계획은 소유를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 자기 물질이 자기 것이라 생각했다. 물질의 넉넉함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소유가 넉넉하면 영혼에 평안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이 부자는 겨울을 준비하지 못했으나 거지 나사로는 겨울을 준비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자신의 영적상태를 꼭 살펴보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가을에 제가 겨울 준비를 잘 했는지 살펴보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겨울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는 믿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종준 목사/동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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