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열차는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 기고 ] 독자투고

이천우 목사
2013년 11월 04일(월) 11:19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객차와 객차 사이에 있는 아궁이에서 무연탄을 피우기 때문에 객차 안에도 연기가 나나 객차 문은 꼭꼭 닫혀 있었다.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객차 안은 먼지와 무연탄 연기와 담배연기가 뒤 석여 매우 열악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여승무원들은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승객들도 마구 담배를 피워대니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22일 동안 심한 기침을 했다.
 
베를린을 떠나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베이징, 단동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지구의 삼분의 일을 돌았다.
 
우리 선조들이 쫓겨가서 살았던 시베리아 벌판은 한없이 넓었다. 울창한 자작나무 숲으로 덥힌 벌판은 끝이 없었다. 띄엄 띄엄 농촌 마을들이 있고 통나무로 지은 빈약한 집들은 몹시 가난해 보였다. 포장된 도로도 안보이고 가끔 자동차가 보이긴 했으나 흙투성이였다. 러시아, 그토록 넓은 땅 덩어리 위에서 사람들이 왜 못사는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은 한 뼘의 땅만 있어도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각종 짐승들을 키울 텐데. 손을 벌리고 구걸을 했다.
 
평화열차 일행들이 모스크바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여러 강사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생각하면서 울었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상호 교류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날이 오면 살아생전 내 늙은 몸이 손수 자동차를 몰고 평양도 가보고 묘향산도 모란봉도 가볼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또 다시 남북은 서로 대치상태가 되었는가. 어찌하여 전쟁연습을 강화하며 분단의 장벽을 더 높이 쌓고 있단 말인가.
 
북녘 땅도 내 조국인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 땅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보면서 나는 울었다. 밤이 되어도 전기 사정이 나빠 불을 켤 수 없는 곳, 압록강 근방에서 배를 타고 수풍댐까지 한 시간을 올라갔다. 배가 북녘 땅 초소들과 마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북쪽으로 가까이 가주었다. 압록강 부근의 북한 농촌 마을들은 한없이 피폐해 보였다. 모든 높고 낮은 산들은 민둥산이었고 산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놓으면 정부가 다 거둬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급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전기를 주고, 압록강 물을 퍼가기에 물어보았더니 식수로 사용한다고 했다. 버스도 승용차도 보이지 않았고 가끔 트럭과 자전거가 지나갔다.
 
단동에서 북조선 사람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북쪽 아가씨들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건너 북녘 땅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북녘 땅도 내 조국인데 갈 수 없다니, 철조망 넘어 들판에서 북한 농부들이 일을 했고 인민군은 땅굴 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압록강 철교 위로 기차는 달려갔으나 평화열차는 압록강 철교를 넘어가지 못했다.
 
22일 만에 돌아온 평화열차, 내 조국 대한민국은 한없이 평화롭고 깨끗하고 풍요로웠다. 산들도 한없이 푸르렀고 들판도 풍요로웠다.

이천우 / 안동동안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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