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만한 곳은 지구다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10월 24일(목) 14:31

그래비티(알폰소 구아론, SF 드라마, 12세, 2013)
 
과학자 뉴턴이 사과의 낙하운동을 단서로 발견한 만유인력(중력), 이것의 철학적인 의미를 성찰한 사람이 있던가? 유대계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으로 '지구'를 제시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녀가 염두에 둔 것은 중력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터전으로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의미였다. 사실 중력은 자전하고 또 공전하는 지구에 인간을 붙잡아 두어 인간으로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인간은 사는 동안에는 지구에 붙어살고, 죽어서는 지구의 일부가 된다.
 
인간의 조건으로서 중력은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때로는 삶의 제약이며 낙하운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추락사고와 익사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해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이 되기도 하다. 어려서 큰누나를 익사사고로 잃고 반중력 운동을 벌인 로저 뱁슨 같은 사람도 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게 한다. 번잡한 곳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결코 떠날 수 없게 만든다. 하늘이 푸를 땐 더욱 떠나고 싶은 곳이 지구이다.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말은 비록 죽음을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인간의 깊은 피로를 표현한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과 몸과 영혼은 지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과 사건에 치여 지쳐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알폰소 구아론 감독은 혹시 현대인의 지친 심신과 영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단순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 공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가설을 바탕으로 지구에서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고 또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삶과 죽음으로 가득한 지구, 그래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지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살만한 곳이라는 것, 다시 말해 지구의 의미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성찰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관객을 제3자의 시점이 아니라 영화 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시점으로 보게 함으로써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마치 우주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 영상기술은 압도적이다. 이것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특히 3D나 아니맥스에서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우주에서 위성파편에 의해 사고를 당해 모두가 죽고 홀로 남은 여성 우주비행사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분)이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다. 스펙터클한 장면이나, 요란하고 소란스런 액션도 없다. 고요함으로 가득한 우주의 배경에서 하나 혹은 두 명이 이끌어가는 단순한 내용이라도 비주얼은 물론이고 관객의 마음과 시선을 흡입하는 스토리전개와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장면들은 감독의 능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던 킨 존스 감독의 '더 문'(2009)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출연한 것과 소재가 지구 밖의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지구 귀환에 대한 갈망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 '그래비티'는 지구의 의미와 가치를 부각시킨 것에 비해 '더 문'은 생명복제와 인간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다. 제63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오를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중력의 철학적, 특히 인간학적인 함의를 성찰함에 있어서 중심 소재는 라이언과 그녀의 삶이다. 아이를 잃고 맘을 붙일 곳을 찾지 못한 그녀는 우주비행사의 꿈을 꾸게 되었고, 고요한 우주공간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 한다. 우주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그녀에게 지구는 슬픔과 상실의 아픔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삶보다는 죽음을 꿈꾸게 하는 곳이 지구였다. 영화는 매트(조지 클루니 분)가 그녀의 주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해 보여주고 있는데, 우주공간에서 느끼고 있을 그녀의 마음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그녀를 외롭게 하고 고독하게 하면서 죽음의 의지를 일으키는 공간에 불과했지만, 우주에서만큼은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성의 파편으로 재난이 발생한다.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우주비행사들은 사망했고, 그녀를 구출해준 매트 역시 우주의 미아가 되어 사라진다. 유일한 생존자 라이언은 한번 움직이면 관성을 제지할 힘이 없어 우주공간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상황은 물론이고 산소가 부족한 상태를 극복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구 귀환을 책임 질 우주선도 파괴된다. 이제 남은 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가서 그곳의 캡슐을 타고 귀환하는 것이다. 죽기를 소원했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유일한 생존자로서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은 라이언이 혼자 남은 상태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신호를 통해 전해지는 지구의 소리들에 반응하는 모습이다. 개 짖는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감격해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환경 파괴, 전쟁, 기근, 정치적 갈등, 가정해체 등 위기의 순간과 삶의 고통 그리고 상실의 슬픔으로 가득한 곳이라도 지구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주신 삶의 터전이다. 이곳은 인간의 지속적인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공간이다. 지구촌의 소식이 아무리 암울하고 또 밝지 않은 미래로 가득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지구는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야 할 공간이다. 중력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의 삶을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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