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논단 ] 주간논단

전재호 회장
2013년 10월 23일(수) 09:17

정부 고위 관료 중에서 종교인 과세를 처음 거론한 이는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다. 1968년 그는 "종교인들도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인 출신인 이낙선씨는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꼽힌다. 징세행정을 책임진 그에게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종교인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씨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종교인 과세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흘렀을 때 한 종교 관련 시민단체가 2006년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이 단체는 정부가 종교인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국세청장을 고발했다. 화들짝 놀란 국세청은 상급부서인 옛 재정경제부에 종교인 과세가 가능한지 질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질의서를 서랍에 묵혔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교계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6년이 흘렀다. 이번엔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섰다. 2012년 봄 박 장관은 "국민개세주의 관점에서 종교인 비과세와 같은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해 8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는 "현행법상 소득이 있는 곳에 납세의무가 따른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박 장관도 나중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정권 교체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종교인 과세는 너무 버거운 과제였다.
 
결국 공은 박근혜정부로 넘어왔다.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종교인 과세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목사, 신부, 스님 등 종교인의 소득은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2015년 소득분부터 세금을 부과한다.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것은 종교인의 소득을 돈벌이가 아니라 봉사에 따른 사례금으로 봐야 한다는 종교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45년이 걸렸다. 흥미로운 것은 여론의 변화다. 예전과 달리 교회 내 여론도 찬성 쪽으로 많이 기운 듯하다. 물론 종교인 과세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국가 권력에 예속된다거나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반대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원칙에 공감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미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종교인들도 꽤 있다.
 
사실 종교인 비과세는 관행일 뿐이다. 현행 세법상 종교인 소득에 비과세한다는 조항은 없다. 관행 뒤에 숨어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바람에 종교인에 대한 인식만 나빠졌다. 심지어 종교인 비과세를 탈세 또는 지하경제의 한 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리저리 따져보면 세금 납부가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무엇보다 떳떳해서 좋다.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도 당당하게 누릴 수 있다. 목회자 대다수는 면세점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이들에겐 국민연금과 실업급여, 기초생활보장 등 저소득층을 위한 국가의 배려가 주어져야 한다.
 
차제에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형교회의 경우 외부의 독립된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기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리알 재정은 교인들 사이의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미국 시인 올리버 웬들 홈스(1809~1894)는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내는 돈"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천상의 것을 추구하지만 발은 땅에 딛고 산다. 세상을 외면한 교회는 있을 수 없다. 세상 안에서, 세상과 부대끼면서 하나님의 뜻을 펴야 한다. 종교인 납세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면 좋겠다. 예수님 말씀 한 자도 틀린 게 없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마22:21)

전재호 회장/파이낸셜뉴스ㆍ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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