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사각지대

[ 논단 ] 주간논단

김경인 목사
2013년 10월 16일(수) 11:31

시야 확보 위해선 몸을 돌리는 노력 필요
건강한 교회 되려면 사회적 책임 다해야
 
5년쯤 전 서울 외곽에 위치한 한 대형교회를 방문한적이 있다. 담임목사가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거대해진 교회였다. 놀라운 일은 그렇게 거창한 성전과 교육관을 갖춘 교회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가난했다는 점이다. 교회 부근의 작은 상점 주인들은 모두 그 교회의 교인이었다. 교인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사실상 그 지역에서는 장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한 교인들에 의해 부흥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교회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남미의 개발도상국들과 아프리카의 정말 가난한 나라들에서 펜타코스탈(pantacostal) 교회의 성장이 두드러진 것도 매우 흥미있는 현상이다. 값싼 은혜라고 해야할까? 헌금하고 헌신하는 것과 비례하여 영적인 축복과 물질의 축복이 보장된다는 '번영 신앙(prosperity gospel)'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하나로 묶어 신자유주의 자본론을 정당화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판을 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쪽 눈을 감고 우리들이 모두 보수 신앙이라는 안락함 속에 묻혀버린 까닭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운전을 처음 배울때 가장 무섭고도 신기했던 것이 바로 '사각지대'였다. 왼쪽 운전석에서 오른쪽으로 차선을 변경하거나 오른쪽으로 평행 주차를 할때 측면 거울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각지대를 보기 위해서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차의 오른쪽 뒤편을 확인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이다. 잠깐 동안 앞쪽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고, 그 짧은 시간에 차 뒷쪽의 움직임을 파악해야한다는 점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겁이 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운전 중 사고를 방지하려면 반드시 배워야하는 운전의 중요한 기술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또 한번 놀란 것은 일부 운전자들이 사각지대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측면경에 또 다른 작은 거울을 붙이거나 후면경을 넓게 개조해서 몸을 돌리지 않고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해도 사각지대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한국교회의 사각지대는 어디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존경받던 지도자들이 재정 문제, 이성 문제 등으로 존경심을 잃어가고, 한국 교회 역시 정체성을 부끄러워해야 할 정도로 신망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가지는 사각지대를 좁혀보겠다고 거울을 덧 달고, 후면을 넓게 보려하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몸돌리기를 거부하는 한 계속되는 사고를 멈추기는 힘들어 보인다.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단지 거울을 덧달고, 시야를 넓히는 노력에 불과하다면 한국교회의 사각지대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좀 더 전체적인, 그리고 정직한 이해가 필요한 때이다. 입맛에 맞는 말씀을 짜집기하는 것으로 만은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이 몸을 돌려 위험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몸을 틀어 뒤편을 직시하고 우리의 현재 위치와 주변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한국교회가 빠져있는 사각지대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신명기 14장의 십일조에 관한 말씀은 너무도 잘 알려진 본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중 몇명이나 3년마다 하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추가 십일조와 구제헌금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 내용은 십일조에 대한 말씀 뒤에 곧바로 따라 나오는 데도 말이다. 개인의 구원과 개인의 경제적인 축복에 대한 열망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절반의 삶 밖에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들에게 사회적 책임과 공적 신앙에 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주시기 때문이다. 개인적 신앙이 운전자가 보는 앞면이라면 공적 신앙은 아직도 한국교회의 사각지대로 어딘가에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국교회 안에서 공적신앙, 사회적 책임이 분명히 보이게 될때, 우리들은 안전하게 이 세상에서 교회를 전진하도록 만들수 있을 것이다. 사각지대 때문에 운전 중 대형사고가 나기도 한다. 교회가 가지는 영적인 사각지대가 교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신앙의 질적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질까 몹시 걱정스러운 때이다.

김경인 목사/CWM 부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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