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VS. '듣보잡'영화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10월 11일(금) 14:22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삼하 5:22~25)
 
저는 영화배우 숀 코네리를 좋아합니다. 007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전설적인 인물이지요. 어느날 TV를 무심코 보는데 '숀코네리의 함정'이라는 영화제목이 언듯 비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런, 그토록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이건만 저는 영화를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영화가 너무 시시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야 생각이 미쳤습니다. '아, 얼마나 영화가 내세울게 없었으면 영화제목 앞에다 배우의 이름을 붙였을까?' 그렇습니다. 영화제목에 배우 이름을 붙이는 영화치고 명화는 없습니다. 명화라면 그럴 필요없으니까요.
 
정말 좋은 영화는 배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가 돋보이게 될 뿐입니다. 정말 좋은 배우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에 감독의 연출의도를 전달하는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명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 감독과 교감하고 그의 지시대로 작품 속의 인물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비웁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통해 자신도 드러나고 감독의 이름도 명성을 얻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발버둥치고 우리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할을 맞기셨을 때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망각했을 때 영화는 우리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정작 영화자체는 한낱 배우의 명성에 기댄 기대이하의 영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 그 역할을 달성해 냈을 때, 우리의 영화는 결과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나를 명배우로 자리매김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감독이신 하나님의 이름도 드높이는 일거 양득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연출의도가 살면 감독도 살고 배우도 삽니다. 하지만 배우가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작품도 죽고 자신도 죽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장에 나선 다윗은 '뽕나무 숲에서 진군하는 발소리가 들리면 공격을 개시하라'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듣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다윗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하면 이렇게 구체적인 감독의 지시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이렇게 민감하게 감독과 교감할까요. 우리인생이라는 거대한 영화의 성패는 우리가 감독이신 하나님의 연출명령을 얼마나 감지하고 또 그것을 순종으로 수용하는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출의도'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다가고 천국의 문이 우리에게 열릴 때 우리 인생이라는 영화가 내 이름 한줄 달랑 걸린 영화가 되어 있을지 아니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고 나는 기쁨을 얻는 명화가 되어 있을지는 오늘 우리가 '뽕나무 숲의 진군소리'를 들으려 하는가란 사실과 또 그 명령에 순종하려 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감독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명화를 만드시기를 기도합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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