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관을 마치며(상)

[ 여전도회관 건축이야기 ]

최영집
2013년 10월 11일(금) 10:12

지금도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일부러 종로로 가지 않고 율곡로를 굳이 경유하면서 '여전도회관'을 음미한다. 그 곳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우리 여전도회원의 기도가 배어 있는 듯하고 정성과 땀이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성, 기도의 성, 전도의 성으로 크게 클로즈업 되고 있는 여전도회관, 과연 여성의 힘은 위대했다. 대한의 여성은 자랑스러웠다.
 
1982년 말 당시 전국연합회장이셨던 이연옥 회장님을 운명처럼 만나고 그 분의 확고한 의지와 불타는 정열을 보았을 때 건축에 관한 일이라면 미력하나마 젊은 힘을 다하여 그 분과 여전도회를 도와드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건립부지가 기적처럼 그 좋은 위치에 확보되니 회관 건립의 꿈은 더이상 꿈일 수 없었고 건축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온갖 건축의 지혜를 동원하는 날이 많아졌다. 건축기금을 아낀다고 저녁값도 서로 나누어 내가며 어린 아이같은 믿음으로 기뻐하며 헌신하던 그 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로 생각하면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처음 3-4층으로 구성하던 회관이 대지상황이나 장래발전을 고려하여 지하 4층 지상 14층 옥탑 2층의 매머드회관으로 계획되었으니 대단한 스케일이었다. 총회에서 집행한 100주년 기념관도 공사비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대이니 그 계획은 무모하기조차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몇 십년을 기도하며 열망하던 여전도회의 꿈은 하나씩 하나씩 실현되기 시작되니 실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땅이 비옥하고 넓어야 열매가 실하며 그릇이 커야 많이 담을 수 있듯이 이 좋은 부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큰 그릇을 만들라는 것이리라 믿으며 밤을 낮으로 알고 직원들과 일치단결하여 설계를강행한 결과 1984년 7월 고대하던 건축허가를 득할 수 있었으니 회관 건설의 반은 완성한 기분이었다.

건축가 최영집(건축연구소 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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