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 논단 ] 주간논단

김기태 장로
2013년 10월 10일(목) 13:06

속도 지상주의 만연, 주님 음성 들을 수 있는 여유 절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매일, 매시간 정신없이 분주하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엇이든 빨리 해치워야하는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다. 공부도, 일도, 심지어는 사랑도 속도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있다. 가히 과속사회이다. 그러니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 속도가 빠를수록 사고의 충격도 크다. 조용히 스스로를 추스르고 주변을 살피는 여유가 없다. 자신만의 시간이 없는 셈이다. 이런 속도지상주의가 일상화된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산다. 동물과 다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대화가 없는 껍데기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쁜 사람들에게서 진지한 자기 성찰을 기대하기 어렵다. 침묵 속에서 들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여유를 만들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뿌리없는 나무처럼 흔들린다. 돈과 권력의 힘에 비겁해지고 쾌락과 정욕의 유혹에 흔들린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도 너무 바쁘다는 사실이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할 교회가 너무 바쁘다. 각종 사업과 행사로 주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바쁜 오늘날 교회를 보면 어지럽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잘 들어야 말 할 수 있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좀처럼 조용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우리 주변은 항상 소란스럽다. 물리적인 소리 뿐 아니라 정신적인 소음까지 더해져 온통 귀가 따갑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위해 퇴근 후 켜는 TV화면도 시끄럽기 짝이 없다.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시종일관 질러대는 고성을 듣다보면 휴식은 커녕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벌이는 토론은 그야말로 싸움판이다. 상대방과 차분한 논리 대결을 벌이는게 아니라 시종일관 자기 주장만 큰소리로 강변하는 전쟁터 같다. 도대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도 너무 소란스럽다는 점이다. 경건하고 은혜로운 영적 분위기가 감도는 은은한 정막과 침묵이 없다. 교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자기도 모르게 엄숙하고 진지해지는 영적 고요함이 아쉽다. 소란스러운 환경에서 진정한 묵상과 기도가 나오기 어렵다. 교회내 부서마다 주변의 다른 모임을 의식하지 않고 온갖 악기들을 동원하여 큰 소리로 드리는 열린 예배나 집회는 마치 시끄러운 공연장 같다. 조금씩 음량을 줄이고 소리를 낮추는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소리가 들린다. 그래야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을 겨를이 없이 바삐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와 삶의 가치 그리고 생명의 근원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기독교인 조차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 분주하고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자아 성찰이 필요한 시대이다. 말은 줄이고 귀를 열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으려는 간절함이 절실한 세상이다. 주님은 쉬지않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김기태 장로/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ㆍ문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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