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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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목사
2013년 09월 13일(금) 13:26
엘리시움(닐 블롬캠프, SF 드라마, 18세, 2013)
 
닐 블롬캠프는 '디스트릭 9'(2009)로 유명해진 감독이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의 현실을 SF로 표현한 영화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실상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충격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하였기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적인 은유에 따르면, 백인에게 흑인은 외계인과 다르지 않았다. '엘리시움'에서는 글로벌 문제인 환경오염과 빈부의 양극화 그리고 의료혜택의 독점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견해를 표출하였다. 소재와 주제는 달라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읽어볼 수 있다. 다소 설명이 부족한 장면들이 있어 스토리 이해에 무리가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도 아니다.
 
'엘리시움'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와 반대되는 곳으로 이상향을 의미한다. 신과 영웅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나 점차적으로 신에 의해 선택되거나 선한 공적을 쌓은 사람들로 확산되었다. 구원을 상징하는 곳으로 보면 되겠다. 영화에서 엘리시움은 부자들의 나라로 표현된다. 지구환경이 위기에 처하자 부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지구에서 떨어진 곳에 인공위성을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이주해갔다. 안락함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있고 특별히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술을 갖춘 곳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세계이다.
 
지구에는 돈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고, 사람들은 엘리시움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생산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삶의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범죄가 일상화되었고 노동착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오직 엘리시움에서만 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시민증을 위조하고 또 비행도중에 격추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시움 잠입을 마다하지 않는다. 꿈의 실현을 위한 여행이고, 특히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생존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특별히 의료기술과 의료혜택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만병통치의 기술을 발휘하는 의료기계가 과장되어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오히려 이런 과장된 표현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영화는 두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제시하며 마무리 한다. 양극화 현상 가운데 특별히 부자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의료민영화 도입과 관련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의료시스템의 문제는 이미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2007)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테이크 쉘터'(제프 니콜스, 2013)에서도 조금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굳이 의료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양극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독해가 가능하다.
 
부자들이 사는 곳을 '엘리시움'이라 명한 것은 다분히 지구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저히 갈 수 없는 곳, 오직 꿈을 꿀 수 있는 곳, 그들에게 엘리시움은 그야말로 이상향이다. 그런 이상향을 부자들은 현실로 누리며 살고 있다. 게다가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통해 지속된다. 그것도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말이다. 편견과 차별 그리고 불의가 지배적이고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가 일상화 된 세계 구조이다. 만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 바로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영화 이야기는 전개된다.
 
최근의 영화 몇 편은 이런 사회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설국열차'는 '엘리시움'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환경오염으로 거의 지구 종말에 가까운 상황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둘째, 구원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은 주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가까스로 생명을 구했으나 불행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셋째, 선택된 사람들이 누리는 호화스러움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유지된다. 넷째, 이로써 새로운 형태의 계급이 형성되고 계급간의 교류와 소통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방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하나는 기차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이다. 선택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두 영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재산 혹은 권력을 바탕으로 누리는 특권적인 지위와 이 때문에 형성되는 사회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하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의 공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사실 양극화된 교회 현실도 사회와 그렇게 다른 것 같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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