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전세광 목사
2013년 09월 12일(목) 11:42

이번 주일도 어김없이 그분은 일찍 오셨다. 주일 아침 7시 반에 시작하는 1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가면 벌써 와서 기다리시는 분.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르지만 아마도 일흔은 훨씬 넘었으리라 생각되는 분이시다. 머리에는 촌티 나는 주황색스카프를 쓰고, 등 뒤에는 괴나리봇짐 같이 분홍색 옛날 여행용 가방 같은 것을 매시고 1층 로비에 꾸부정하게 앉아계신다.
 
주일날 내가 제일 먼저 머리 숙여 인사하는 그 분, 그러나 그분은 전혀 꿈쩍도 않고 인사를 안 받으신다. 그런데도 나는 그분이 와줘서 고맙고, 인사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기쁘다. 그분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저 들려지는 얘기는 원래부터 농아장애인이라는 말도 있고, 언제부턴가 갑자기 입을 닫고 말을 안 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거처는 어딘지, 가족은 있는지 도통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분이다.
 
그분을 교회에서 보기 전에 길거리에서 보았다. 늘 꼬부랑 모습으로 온 동네를 열심히 다니시는 우리동네 기인이셨다. 무엇을 주우러, 얻어먹으러 다니시는 게 아니란다.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앞만 보고 세상을 주유하신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데 그분이 언제 부턴가 우리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로비에만 들러 물을 마시고 쉬고 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신기하게도 예배 시간에 참석해 맨 뒤에 앉아있다. 왜 그리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고 흥분되는지. 마치 주님이 오신 것 같은 기쁨이었다. 이제는 2부 예배를 꼬박꼬박 드리실 뿐 아니라, 어느 날 오후 찬양 예배에도 참석하는데, 찬양시간에 박수를 따라하더니 손을 들고 몸 찬양을 따라하시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내 눈은 촉촉해졌다. 더 감사한 것은 이제는 교회카페에도 버젓이 나타나 커피나 쥬스를 사 드신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얼마나 감사한지.
 
이상한 것은 그분이 오시면 '아! 오늘도 오셨구나' 마치 주님이 오신 것처럼 힘이 난다. 그분이 안보이시면 왠지 섭섭하고, 자꾸 기다려진다. 그분이 우리교회 와 주시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한건 왠일 일까?
 
또, 1부 예배를 마치고 내려올 때, 늘 나를 반기며 다가와서 '우리식구 다 왔어요'라고 자랑하면서 먼저 악수를 청하는 분이 있다. 온가족이 다 지적장애가 있는데 세 식구가 길에서 박스를 주우며 살아가기에, 일명 '박스 가족'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성도도 있었지만, 주님 앞에 나올 때는 깨끗이 씻고 나와야 한다고 했더니 지금은 말끔히 씻고 나오는 그 분.
 
3부 예배 후엔 남편은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아내는 원인모를 불치병으로 몸이 편찮은 가운데도 나와 기도를 받고 가고자 함께 앉아서 기다리는 집사님 부부,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하고 전혀 움직이지 못해 특수 휠체어에 의지하고 나오는 상준이, 뇌의 발달장애로 역시 특수 휠체어를 타고나오는 은비, 그리고 두 엄마들. 교회에 '장애우부'가 없어서 늘 미안한데, 그래도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서 늘 감사하다는 그분들, 또 이들과 함께 형제자매의 사랑을 나누며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들 한분, 한분. 목사인 나에게는 세종시가 되어 우리교회에 나오는 행정부고위층의 분과 똑같이 참으로 소중하고, 그 누구보다도 보람과 소망과 힘을 주는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성도들'이다.(빌 4:1)
 
언젠가 대형문고사옥에 걸렸던 글, 우리교회 구석구석에 붙여놓은 글, "한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전세광 목사 /세상의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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