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9월 05일(목) 13:24
일대종사(왕가위, 무협/액션, 12세, 2013)
 
'일대종사'란 한 시대에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스승을 두고 일컫는 말로 영춘권의 일대종사였던 엽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무술인과 배우로서 성공했던 이소룡의 스승으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간 엽문의 생애를 다룬 네 편의 영화들은 주로 무술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왕가위 감독은 9년 동안의 작업 끝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무술인으로서 엽문의 삶을 재구성하며 새롭게 해석했다. 액션의 화려함보다는 무술의 철학을 표현하는 데에 더 큰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실제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무술이 아닌 철학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이치가 있는 무협의 세계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쉬운 점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영상과 잘 이어지지 않는 스토리 그리고 인물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대중적이지 못한 것과 1930~1950년대에 일제 침략기와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던 시절에 대륙과 홍콩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상황 전개, 그리고 엽문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인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초고속 카메라를 통해 빗방울의 움직임까지도 포착한 세밀한 표현은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어도 예술을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영화의 화두는 영화를 열고 닫는 장면에 엽문의 독백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무술은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최후에 수직으로 서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영화의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기에 질문이 생긴다. 과연 최후에 수직으로 서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서있는 것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대조적인 캐릭터로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마삼이다. 그는 궁보삼의 후계자로 책봉된 인물인데 서있는 것을 단지 힘의 우위로만 생각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안하무인이었다. 스승인 궁보삼은 마삼의 경박함을 엄히 책망하며 물리치고 대신 후계자의 자리를 엽문에게 물려준다. 고향으로 돌아간 궁보삼은 후에 마삼에게 마지막 고수를 가르치면서 그것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임을 말한다. 이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편에 서있는 마삼을 돌이키기 위해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삼은 스승의 경고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끝내는 스승을 살해하기까지 한다. 기세등등했던 그도 결국 궁보삼의 딸 궁이와의 싸움에서 수평의 상태로 떨어진다.
 
궁이는 아버지로부터 64궁수를 전수받고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만 정혼한 여성의 몸이기에 후계자로 택함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살해된 후 궁이는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결혼과 여성으로서 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복수를 맹세한다. 궁이에게 서있다 것의 의미는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철학이었는데, 먼저 자신을 보고 천지를 보며 그리고 중생을 보는 것이었다. 무술의 깊은 뜻을 다 이루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무술의 의미가 단지 싸움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세우되 천지의 뜻에 어그러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중생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에 있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중생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궁이는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여성이기에 제자를 둘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마지막 하나만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아쉬움 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무술인으로서 엽문의 삶을 조명하는 왕가위의 의도는 비록 엽문이 비극적인 시대의 운명 때문에 인생의 사계절을 오롯이 살아내지는 못했어도 중생을 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무술의 최고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다분히 무술에 반영되어 있는 중국정신이 엽문에게 구현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의도를 읽어볼 수 있다. 다소 과장한 듯한 느낌을 받긴 해도, 무술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왕가위의 연출 능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염문에게 서있다는 것은 인생에 어떤 역경과 시련이 온다 해도-잠시 동안의 수평상태는 있을지라도-결코 그것에 좌절하여 넘어지거나 머무르지 않고 무술의 철학을 실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수평과 수직에 대한 영화적인 성찰에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이유는, 비록 수평과 수직에 대한 직접적인 성찰은 아니라도,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3)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이스라엘의 잘못된 예를 따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서있다는 것을 왕가위는 어떤 역경에도 무술이 함의 하고 있는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성경은 어떤 시험이 와도 은혜 안에 견고히 머물러 있는 것을 기의한다. 넘어질 때가 있으나 다시 일어서서 마침내 은혜 안에 안식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최후에 서있는 자가 되는 상태이다.(히 4:1~13)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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