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의 최후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8월 28일(수) 14:33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The next day, when the Philistines came to strip the dead, they found Saul and his three sons fallen on Mount Gilboa. They cut of his head and stripped of his armor, and they sent messengers throughout the land of the Philistines to proclaim the news in the temple of their idols and among their people. They put his armor in the temple of the Ashtoreths and fastened his body to the wall of Beth Shan.(삼상 31:8~10)
 
오래전 한 어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항구에는 배들이 많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큰 배, 작은 배, 고기잡이 배 그리고 돈 꽤나 있는 분들의 요트 등등. 그런데 유난히 제 눈을 끄는 배가 하나 있었습니다. 길이가 십여 미터 되는 어선인데 웬일인지 그 어선은 물가가 아닌 항구의 공터에 덩그러니 올라와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페인트는 벗겨지고 나무는 썩어나가고 유리창은 깨졌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답답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배는 마치 쓰임을 받기 위해 창조되었지만 전혀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저 자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에 있어야 할 배가 그 배를 훤히 드러내 놓고 행인이 오가는 길가에 나와 기울어져 있다니. 교회를 다니던 저였지만 그 시절은 사실 아무런 역할도 봉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저 자신만을 위해 살던 때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뽑혀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는 그도 순수하고 겸손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된 이후 그는 어찌된 일인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국가지대사를 자신의 뜻대로 처리해 버립니다.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숙적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멋대로 거역하더니 선지자 사무엘이 행해야 할 제사를 그가 늦게 온다며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행해버리는 등 크고 작은 일들로 하나님의 눈밖에 나버립니다. 그런 그가 다윗을 질투하여 죄없는 그를 수년간 추적하지만 사무엘의 예언대로 그의 하는 모든일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창에 맞은 그가 자결을 선택한 후 블레셋은 그의 목을 베고 그의 시체를 성문에 걸어 버립니다. 그의 일행이 가까스로 그 시신을 찾아다가 장사하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는 실패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람인데도 후대에 아무도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그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성공을 논해야 할까요. 평범한 마굿간지기라도 성공한 사람일 수 있으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실패자 일 수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그것은 진정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이루어냄'이 아니라 '쓰임받음'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고 쓰임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승진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지만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똑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름부음과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왕이 되는 방식도 대동소이 했습니다. 많은 전쟁을 겪었고 많은 승리를 쟁취한 것도 똑같습니다. 사울은 전사하고 다윗은 제 수명을 다 살았지만 그 사실 만으로 다윗이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사한 왕중에도 명군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폭군과 성군의 차이는 단 하나 그가 '누구를 위한 성취를 했는가'하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은 배로 창조되었습니다. 배는 바다로 나아가지 않으면 정말 초라합니다. '쓰임받음'의 바다로 노저어가 돛을 올리고 마음껏 항해해야 행복합니다. 혼자서 길가에 아무리 큰 배를 만든들 그 배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보는 이는 점점 서글퍼지고 선주는 숨이 막혀 옵니다. 배는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객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 적당한 화물(일:생업)을 싣기는 하지만 그 화물은 모두 다 거기 탄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태운 여객선으로 기름부음 받았지만 항구에서 한 발짝도 쓰임의 바다로 나아가지 않은 왕입니다. 오히려 부둣가 공터로 올라가 초라하게 수명을 다한 배입니다. 다윗은 부름을 받은 즉시 사람들을 싣고 사명의 바다로 달려 갔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만났지만 결국 그는 진정한 왕으로 등극합니다. 항구 공터의 사울, 망망대해의 다윗, 여러분은 어떤 배가 되고 싶습니까.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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