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26~31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8월 22일(목) 11:01

월-육체의 15가지 열매
본문 : 갈 5:16~21
찬송가 : 80장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1~3)"고 하셨다. 육체가 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에서 비틀어지고, 하나님의 질서에서 파괴되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을 좇아 행하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충만하지 못하면 육체의 소욕을 좇아 성령을 거스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대적하며 육체의 열매를 맺는다. 육체의 일은 뚜렷이 나타난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가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맺는 육체의 열매다.
 
십계명 중 1, 2, 3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늘에, 땅에, 물속에 있는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여호와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며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심을 믿지 않고 거역하여 배로 하나님을 삼고 점쟁이, 무당을 찾아가 복 받는 방법을 묻고, 술수와 음행하는 더러운 일을 한다.
 
원수 맺음,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은 이웃에게 맺는 육체의 열매다.
 
육체의 소욕은 이웃이 잘되는 것을 싫어한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250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1~3)"라고 했다. 고라당과 250인은 땅이 삼키고, 불이 살라 멸했다.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딤전 6:4)"라고 했다. 육체가 되면 이웃을 사랑하지도 조화를 이루지도 못한다.
 
분리,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맺는 육체의 열매다.
 
자신의 생각, 마음, 입술,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육체가 하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대로 방임한다. 하나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아는 것이 바르다고 하며 육체를 욕되게 한다. 이것이 육체의 열매들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성령충만케하시어 저의 마음을 주장하옵소서. 육체가 아닌 성령을 좇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필옥 목사 / 명진교회


화-푸른 감람나무
본문:시52:1~9
찬송가:570장
 
성경에는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종려나무, 백향목, 엉겅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나온다. 감람나무는 성전 뜰에 심기운 나무인데 이 나무는 커서 하나님 앞에 믿음과 헌신을 드리는 영적인 교훈을 주는 나무이다. 스가랴 4장 11절에는 감람나무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비유한다. 로마서 11장에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게 접붙힘을 받아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나온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심겨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하나님을 믿은 우리들이라고 말한다.
 
첫째, 푸른감람나무는 '참 생명'을 상징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지으실 때 동물의 생명처럼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동물의 생명은 목숨이다. 목숨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삶의 물질적 조건만 충족되면 살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대로 지음을 받은 영적인 생명이다.
 
어떻게 여호와의 성전에 심겨진 감람나무들이 참된 생명의 활력을 가질 수 있을까?
 
생명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생명의 원천되시는 하나님 곁에 있으면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죽은 자와 함께 있으면 죽음으로 나아간다.
 
이스라엘 형벌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시체에다 산 사람을 함께 묶는 것이다. 며칠 후 시체와 함께 산 사람이 죽어 있다. 생명과 죽음은 동시에 번져가는 속성이 있다. 우리는 생명되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둘째, 푸른 감람나무는 '참 평화'를 상징한다.
 
노아가 홍수 후 까마귀와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보내니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다. 감람나무는 평화를 상징한다. 참 평화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참 평화의 주인이시다. 유전공학, 우주공학, 최첨단 기술과학의 시대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결국 더 고독하고 단절된 비인간화의 삶을 재촉할 뿐이다. 푸른 감람나무 같은 참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이다.
 
셋째, 푸른 감람나무는 '참 헌신'을 상징한다. 성전 뜰의 감람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성전의 등대 등잔불을 밝힌다.
 
성전의 불은 반드시 감람기름으로 밝힌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성전의 감람나무처럼 푸른 기상을 가지고 헌신하면 교회와 사회와 국가가 더 밝아질 것이다.
 
빛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고 참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심기운 감람나무처럼 교회 중심의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로 인해 세상에 참 평화와 생명력이 풍성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렬 목사 / 경신교회


수-율법의 핵심
본문: 막 12:28~34
찬송가: 218장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유대교 서기관과 대화하신 내용이다.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묻는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님은 구약성서의 율법 중 두 조항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6:4~5)의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레위기(19:18)의 계명이다. 대화하는 상대가 율법에 정통한 서기관이기에 예수님은 그가 잘 아는 구약성서의 율법 구절들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 시대에 어느 이교도가 유대교 랍비인 힐렐에게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가 가르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미워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말라. 그것이 토라의 전부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그것에 대한 주석일 뿐이다. 가서 그것을 배워라." 유대교는 이처럼 사랑을 첫째가는 계명으로 보지 않는다. 유대교가 사랑을 말할 때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마 5:43)는 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미움에 반대되는 우호적인 태도를 말할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의무를 한 마디로 요약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한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은 보편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로 가는 우리의 여정을 중단하도록 부추길 때 그것은 미묘하게 우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셨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은 이웃을 보는 우리 시선의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가 우리의 사랑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신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오늘 복음의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한 질문은 '첫째가 되는 계명'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물음에 대해 두 개의 계명을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사랑하라'는 하나의 계명이다. 유대교 서기관은 큰 깨달음을 얻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율법을 지키고 제물을 바쳐서 두려운 하나님으로부터 혜택을 입겠다는 자기를 중심으로 보는 신앙에서 물러섰다. 예수님은 그 서기관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다. 그것이 본능을 넘어서서 하나님에게로 도약하는 신앙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제한 없이 사랑하는 데 마음과 뜻을 다하게 해 주시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승표 목사 / 길벗교회


목-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자
성경 : 약 3:1~12
찬송 : 426장
 
오늘날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항해서는 대단한 신앙심을 보이는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실패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승리했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이러한 삶이 제대로 된 신앙이다.
 
그렇게 실패한 자들을 야고보에서는 두 가지 샘물(단물과 쓴물)을 내는 심령이라고 말씀한다.
 
쓴물을 내는 말의 실수는 첫째, 큰 것을 자랑하는 혀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적이고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찬송의 개념이다. 비록 곡조와 음은 없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면 그것이 곧 찬송인 것이다.
 
시편 106편 3절에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잘난 것, 가진 것, 힘과 능력, 권력들을 자랑하려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실수인 것이다.
 
두 번째는 불같은 혀가 실수다.
 
"이 같은 불은 지옥불에서 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말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받고 한 가문이 몰락한다면 이것이 지옥으로부터 온 불 같은 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지옥에서 온 불같은 말은, 다툼을 일으키는 말, 이간질하는 말, 거짓 선지자처럼 꾀는 말, 유혹하는 말이다. 그런 말이 말의 실수이다.
 
세 번째로 한 입으로 하나님도 찬송하고 사람에게 저주도 하는 입을 말한다.
 
야고보는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저주하며 살다가 주일날 하나님 앞에 와서 찬송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한꺼번에 나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 입술이 실수하는 입술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내 삶의 현장에서 큰 것을 자랑하는 말, 불같은 말, 저주하는 말이 나간다면 그것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혀는 주님을 자랑하는 혀가 되어야 하고 남을 살려주고 세워주는 말 오직 주님을 찬송하며 사는 단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이 작은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경배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게 하시고 주님을 전하는 입술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두진 목사 / 신광교회


금-주님의 능력을 맛본 사람
본문 : 눅 5:12~16
찬송가 : 425장
 
주님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 능력으로 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주님에게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이 내 삶에 임하지 않는 한, 주님의 능력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다. 날마다 그 능력을 맛보고 누리며 내 삶에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의 능력을 맛보고 내 삶에서 경험한 한 사람이 나온다. 바로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다. 나병은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나아가서는 영적으로도 저주 받은 질병이다. 이 질병은 몸은 썩어가고 죽어가도 느끼지 못한다.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게 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저주의 상징이다. 그런데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 그 나병이 곧 떠나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주님의 능력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나에게 다가온 사랑의 손길이 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첫째, 그는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만한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나도 깨끗해질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다. 이 소망이 주님의 능력을 붙잡게 했다. 소망을 잃으면 죽지만, 소망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누리게 한다.
 
둘째, 그는 겸손히 주님만을 바랐다. 이 사람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공개해야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만 바라고 예수님께 나왔다. 그리고 주님을 보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엎드려 구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울 때 주님의 능력이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너무 많은 '내'가 있어서 주님을 붙잡을 수가 없고, 주님께서 거하실 공간이 없을 때가 있다.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그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오랫동안 고칠 수 없는 질병, 풀리지 않았던 문제,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운 골칫덩어리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이 사람의 믿음은 그저 나을 수 있다는 자기 암시나 인간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면 해결될 수 있다는 주님 중심적인 믿음이었다. 이 확신이 주님의 능력을 맛보게 하였다. 믿음에는 주님의 능력을 나의 삶에서 현재화하는 힘이 있다.
 
주님을 향한 소망을 잃고, 겸손히 주님을 바라지 않았으며,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주님의 능력이 나의 삶에 현실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나의 문제만 보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겸손히 주님께 엎드리며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인호 목사 / 예명교회


토-끈기있는 신앙
본문 : 약 5:7~11
찬송가 : 411장
 
지난날을 뒤돌아 볼 때 후회되는 일들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한다. 이 세상에 인내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까? 본문은 먼저 '농부처럼 인내하라'고 하신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농부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기 때문에 땀 흘리고 수고하며 인내한다.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약속하셨다. 비록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고, 아프고, 괴롭지만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날이 있다. '귀한 열매, 좋은 열매'를 주실 줄 것을 바라보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자.
 
둘째로 '선지자들처럼 인내하라'고 하신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선지자들은 주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왕 앞에, 혹은 이방 나라에 가서도 말씀을 전해야 할 때가 있었다.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핍박받고 목숨을 잃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하고 핍박받는 것을 겁내지 말고 오히려 영광과 자랑으로 여기며 인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욥처럼 인내하라"고 하신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이 당한 고난은 참 애매한 고난이었다. 고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며 끝까지 인내했다. 욥의 인내는 비결은 하나님을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겪는 고난의 이유를 지금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셔서 선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확신했다. 결국 그 믿음대로 그는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차사순할머니는 959번의 실패를 극복하고 960번의 도전만에 68세의 나이로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500만원의 인지대와 500만원의 버스비가 들었지만, 간절한 소망이 그를 인내하게 만들었다. 그의 인내는 국내외 언론이 극찬했다."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성도를 칭찬하시는 말씀마다 '인내'에 대한 내용이 있다. "내가 네 행위가 수고와 네 인내를 아노라(계2:2)." 인내로 하나님께 칭찬 듣고 상급받는 '끈기있는 성도'가 되자.
 
<오늘의 기도>
주님, 너무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일에 인내함으로 주님께 칭찬 듣고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우식 목사 / 신흥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