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인생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위한팡세

전혜정 총장
2013년 08월 14일(수) 11:10

하루를 사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주변의 모든 것에 온통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침 식사 때는 오이, 당근, 계란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어야 살아 갈 수 있고, 출근하느라 운전할 때는 배기가스로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공기를 오염시켜야 한다. 또 우리 몸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물질이 주변 공간과 물을 오염시킨다. 내가 산다는 것은 남의 희생이나 손상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인듯 하다.
 
필자가 이 세상을 살아 온 지도 60년을 넘어 70년을 향하고 있다. 아마도 세상을 떠날 날이 지금껏 살아 온 날에 비해 짧을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 깨닫고 빚을 갚아 보려고 해도 이미 아무 생각 없이 빚지고 산 인생보다 짧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주변에 많은 피해를 주면서도 그런 삶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살아온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인간과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필자가 인생 황혼에 다달아서야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무척 부끄럽다.
 
많은 철학자들이 삶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이기적인 자기 욕구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견 욕구 충족이 만족을 가져오고 결국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참 묘해서 욕구가 충족돼도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것까지 추구하다가 결국 더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욕구 충족을 지향하는 삶은 끊임없이 커지는 욕구가 초래하는 불만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빚지고 사는 인생과 이런 욕구 지향적 삶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욕구 충족을 위해 사는 인생에서는 계속 그 빚이 늘어 간다는 사실이다.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음식을 먹고, 더 큰 차를 타고 다녀야 하기에 결국 쓰레기나 오염물질 등을 통해 다른 생명들을 위협하게 된다.
 
현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떻게 자신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일까?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자신의 욕구를 줄이는 삶이고, 적극적으로는 남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봉사를 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통찰해 보면 이런 소극적 삶이 우리에게 큰 행복을 안겨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보다 큰 행복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해 사는 삶이 필수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셨다. 말씀에 순종하든지, 부정하든지 이들 중 어느 것을 위해 살 것인가를 선택하고 살아야한다. 선택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인간은 본원적으로 남을 위한 삶에서 자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설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더 큰 욕구 불만을 생성시킬 뿐 아니라, 주변에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남을 위한 삶은 우선 남의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무언가로 가득 차게 만든다. 남을 위해 사는 데 그 효과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빚지고 사는 인생에서 빚 갚는 길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이웃을 위해 소명감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닐까? 

전혜정 총장/서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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