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지서 들은 것과 달랐어요"

[ 교계 ] 영크리스찬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3년 08월 12일(월) 10:35
모국에서 홀로서기 시작한 MK 전진 씨
 
   

"15년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곳은 이미 낯선 나라가 되었죠. 한국은 그저 도피처였고, 잠시나마 힐링을 취하고 싶었던 나라에 불과했어요."
 
해외 선교사역을 떠나게 된 부모를 따라 선교 현장에서 20여 년을 지내며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한 선교사 자녀가 한국 사회에서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고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
 
본교단 총회 파송 전준수ㆍ정은옥 선교사 부부(남아프리카공화국)의 차녀 전진(30세) 씨가 그 주인공.
 
부모를 따라 케냐와 남아공에서 22년을 지내고, 28세에 한국으로 돌아와 방송 외주제작사 '프로섬' PD로 활동하고 있는 당찬 그녀에게 부모를 선교사로 파송한 한국의 첫인상은 세계 여느 나라와 다름없는 '외국'일 뿐이었다.
 
"한국은 신비롭고 이해가 안 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알던 모든 사고방식과는 달랐고, 그것에 대한 실망이 커져 마음에 분노마저 생겼다."
 
너무 오랫동안 한국을 떠났던 것일까. 믿음의 고향, 부모의 고향인 한국, 그녀가 접한 어색하기 짝이 없는 한국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전 씨는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6살 때부터 너무나 많은 이별의 아픔을 품고 살아야 했죠. 고등학생 때까지 매년 전학을 갔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선교사역 현장에서 MK로서 받는 아픔과 이별, 외로움과 불안정한 환경은 그녀를 카멜레온처럼 변화에 능숙한 청년으로 성장시켰고, 그것은 발판이 되어 한국 사회에도 조금씩 적응하는 단초가 됐다.
 
결국 전 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해 온 방송 일을 한국에서도 충실히 해 보기로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PD는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고, 작가의 일도 겸해야 했고, 종편 할 때는 밤을 며칠씩 꼬박 새며 지내야 한다"며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로 위염, 간염, 신장, 심장까지 안 좋아져 나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됐다"고 말했다.
 
전 씨의 노력과 열정이 한국사회 홀로서기의 활력소가 됐던 것일까. 그렇게 밉고 싫어 보이던 한국 문화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은 그녀에게 내려놓음과 겸손의 교훈을 일깨워 줬다.
 
전 씨는 "MK의 삶으로 습득한 적응의 기술이 있었기에 어느 나라에 가서 살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만드신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며 즐겁게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며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나라이고, 하나님께서는 MK에게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축복을 주신 것 같다"고 소개했다.
 
한편 전 씨는 수많은 선교사 자녀, MK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사랑도 요청했다.
 
"한국에 와도 갈 곳도 없고, 살 곳도 없는 MK들이 많다. 결국 MK 청년들의 한국사회 적응은 쉽지 않다"며 "소외감이 들 때 상처는 더 크다. 한국교회의 자녀, MK를 위한 사랑과 기도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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