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12~1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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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06일(화) 15:45

월-좋은 여행   
본문: 요한삼서 1:2 
찬송가: 384장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인생을 '소풍'으로 묘사했다. 어린 시절 소풍가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였던 추억이 있다. 우리 인생을 소풍처럼 행복하게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가서 세상에서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큰 축복이다. 우리 인생은 순례자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간다. 인생의 여정이 좋은 여행이 되어야 한다.
 
본문은 장로 요한이 가이오에게 좋은 인생의 여행이 되도록 축복하는 기도문이다. 좋은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행의 동반자가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최고 동반자는 하나님이시다. 비록 위험한 길도 안전한 사람과 가면 그 길은 안전하다. 그러나 안전한 길도 위험한 사람과 가면 그 길은 위험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행은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일생의 여행 중에 세 가지 축복을 주신다. 그것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다. 이 축복을 가리켜서 우리는 '전인적 축복'이라고 말한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자여"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사랑은 전인 건강의 핵심이다. 우리가 인생 여행을 할 때 건강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 건강은 전인(well being) 건강이다. 전인 건강이란 건강의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 혼, 육의 모든 부분의 균형잡힌 건강이다. 즉, 통전적(通全的) 건강이다. 이 건강의 중심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이 건강은 가능하고 우리는 기쁨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폴 틸리히는 "사랑이란 삶을 움직여 나아가는 힘"이라고 선언했다. 이 사랑이 있으면 때때로 닥치는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이 몰아쳐도 우리는 생명력 넘치는 용기로 건강한 여행을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행한 대 학살의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안네 프랭크(Anne Frank), 빅톨 프랭크(Viktor Frank), 엘리 위젤(Elie Wiesel) 같은 사람은 영과 육이 건강한 가운데 믿음의 길을 갔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하고 건강한 인생 여행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인생길 가는 동안 하나님을 모시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행이 되도록 복 내려 주옵소서.
우리 영과 육이 평안하고 건강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즐거운 여행이 되게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렬 목사 / 경신교회


화-가장 중요한 것
본문: 누가복음 10:38~42
찬송가: 425장 
 
오늘 성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를 예수님이 방문하신 이야기이다. 언니 마르다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분주하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런데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청하기를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돕게 해달라고 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대답 말씀으로 끝난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는 각각 자기의 방식으로 손님이신 예수님을 대접한다.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을 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다. 손님이 말씀하실 때 잘 듣는 것 역시 그 사람을 환영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두 자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인다. 그런데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청한 대로 마리아를 타일러 두 자매를 화해시켜 주지 않는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에 여성들이 참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남성들의 과제이며 책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인으로 마리아는 그 법칙을 깨뜨리고 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마리아는 한 인간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자 마르다는 '집의 여주인'으로서 예수님께 불평한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관념을 깨뜨리라고 초대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자면 기도(예배)와 행위(실천)는 모두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도와 행위 가운데 어느 하나 만을 편드셨다고 보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관심과 환대 방식에도 응답하지만, 마르다가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일깨우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마음이 중요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차려진 한 상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간편하게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관심이 마르다처럼 실제로 중요한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간의 뜻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으뜸가는 덕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늘의 뜻을 헤아리려면 우선 제자리에 앉아야 한다. 사람이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귀기울여 듣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마리아가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신 하나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증언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임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승표 목사 / 길벗교회


수-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본문:롬 12:1~2
찬송가: 23장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 11:36)"라고 했다. 근원을 하나님께 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드림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
 
몸을 드리라 하신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드리면 기뻐하신다. 사람의 몸은 육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몸과 영, 마음과 전인격을 가리킨다. 우리 몸은 예배를 드리지만 구약의 동물 제물처럼 죽여 각을 떼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이다. 그래서 예배(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만 온 몸과 마음을 드릴 수도 있고, 몸은 예배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사업장, TV, 친구, 휴대폰 등에 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산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죽은 제사다. 하나님은 몸과 영, 마음과 전인격으로 드리는 산 예배를 기뻐하신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하신다.
 
이 세대를 왜 본받지 말라고 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다. 이 세대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하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신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 세상을 본받게 하려고 첨단기술의 산물과 문화, 풍습, 세상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을 빼앗으려 한다. 성도는 이런 것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좇는 순종의 삶을 살면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하신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5:22~24)"고 하신다. 사람이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힘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엡 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하셨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가 세상과 짝하는 삶과 불의한 삶에서 몸과 마음이 씻음 받고 거룩함으로 변화를 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예배를 드릴 때 기뻐 받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필옥 목사 / 명진교회


목-말씀을 품은 사람들 
본문: 삼상 6:19~7:2
찬송: 546장
 
본문은 엘리 시대 때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이 언약궤가 블레셋의 땅에 들어온 후로 블레셋에는 재앙이 임하기 시작했다. 다곤 신상이 무너지고,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가 생겨 블레셋 사람들이 망하게 되었다. 결국 언약궤는 원래 있었던 이스라엘 지경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여, 벧세메스에 이르게 되었다. 언약궤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너무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저들은 호기심에 여호와의 궤를 열어보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기야 이 언약궤는 아비나답 집으로 옮겨 20년 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아비나답의 집은 20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고 이 기간을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똑같은 언약궤인데 왜 어떤 사람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진노와 심판의 채찍이 되기도 하며,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가이다. 그것은 언약궤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다곤의 신전에 두었다. 즉, 저들의 삶의 중심은 언약궤가 아닌 다곤신이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기는 했지만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처음에는 언약궤를 맞이할 때 감격과 감사가 있었다. 기꺼이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을 드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호기심으로 언약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내 방식대로 말씀을 함부로 난도질하고 경솔히 대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5만)70명이 죽자, 저들은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회개하고 다시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포기한다.
 
반면에 기럇여아림의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진영으로 옮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다시는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또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궤를 지키도록 하였다. 언약궤를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힘썼다. 말씀을 가슴에 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궤가 머무는 20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가 기럇여아림에 있었고 신앙의 회복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소유하되 내 인생의 중심은 말씀이 아니라 세상은 아닌가? 말씀을 기쁨으로 대하기는 하지만, 내 방식대로 말씀을 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말씀을 품고 말씀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오늘도 말씀을 그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럇여아림의 사람들처럼 말씀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인호 목사 / 예명교회


금-일단 멈춤
본문 : 창세기 2:1~3
찬송가 : 417장
 
우리는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빨리빨리'이다. 음식점에 가서 앉자마자 음식을 재촉하고, 택시를 타면 빨리 가자고 요구하고,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가 오지 않으면 조급해한다. 너무 바쁘고 분주하게 살다 보니 더욱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동생 마리아는 만사를 제쳐놓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열심히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언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고, 쓸데없이 염려하며 근심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선언해 주셨다.
 
마르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 교제하는 일을 뒷전으로 한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몰두하여 동분서주 하며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피곤하고 탈진해간다.
 
얼마 전 순례지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기차 탈선사고가 나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곡선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과속으로 운행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달릴 때는 달려야 하지만 속도를 늦추거나 또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인생도 위험하다. 한 번씩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안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을 뿐 아니라, 매일매일 그날의 창조를 마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피조 세계를 감상하며 안식하셨다. 그런데 능력이 한이 없으시며 피로를 모르시는 하나님께서 왜 안식하셨을까?
 
'일중독'이란 병이 있다. 쉬지 않고 일하고 잠시라도 쉬게 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병이다. 이들은 스스로 일을 통제하지 못하고, 일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안식하심으로, 스스로가 '창조의 주인, 만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예배드리라는 계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함으로, 일의 노예, 시간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라"는 준엄한 계명인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일과 시간의 노예로 지쳐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 부르고 계신다.
 
"재테크보다 중요한 것은 시테크이고, 시테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쉼테크"라고 한다.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더욱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잘못된 우선순위를 가지고 일의 노예로 살지 말게 하소서.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안에서 마음껏 안식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우식 목사 / 신흥교회


토-회개합니다
본문: 단 1:1~2
찬송가: 280장
 
유다왕 여호야김이 3년차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1차 침공을 자행하고 왕과 여호와의 전 그릇을 가져가서 자기 신들의 신전에 보물창고에 두었다. 그 외 똑똑하고 흠이 없는 소년들도 데리고 갔다. 결국 유다는 BC 586년에 망하고 말았다. 그 이유 무엇일까?
 
첫째,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렘 25:6~9 말씀에 보면 "너희는 다른 신을 섬기거나 경배하고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런데 너희가 노여움을 일으켰다. 그래서 북쪽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진멸할 것이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땅은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은 풍요와 성적인 축제의 신을 섬겼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무엇일까?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들이다.
 
둘째, 안식을 범한 죄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히스기야가 물질을 자랑하다가 그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빼앗긴 그릇들은 어떻게 사용됐을까? 5장에 보면 벨사살왕이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이 탈취해온 성전의 기명들을 잔치할 때 술잔으로 사용하고 있다. 얼마나 부끄럽고 가증한 일인지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의 그릇들을 조롱하고 가증하게 사용하도록 스스로 내어 주셨는가. 하나님은 이 세 가지 죄 때문에 가장 아끼는 내 집, 성전까지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까지는 잘 부흥 성장해 왔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모태가 될 만한 큰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될텐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 세태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힘을 모아 죄악된 사회를 구원하고 이단 사이비들과 싸워도 부족할 때인데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여러가지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하나님 앞에 죄스러울 뿐이다.
 
남유다를 보자. 세 가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망시켰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성전까지도 무너뜨렸다. 에배소 교회처럼 한국 교회도 촛대가 옮겨갈 수가 있다.
 
회개하자. 회개해야 산다. 초대교회 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산다. 지금 문제가 있는 모든 교회는 잘 잘못을 떠나서 다 내려놓고 다툼부터 끝내고 순교정신으로 교회를 다시 세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우상을 섬기며 안식을 거룩히 지키지 못하고 세상 것을 자랑했던 죄를 용서하시고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은총이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두진 목사 / 신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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