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통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까?"

[ 교계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07월 08일(월) 11:04
원자폭탄 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발의
피폭 피해자 7만여 명, 후유증 앓고 있는 이들만 2600여 명
 
   

세계제2차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어 3일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또 한차례의 원폭투하 후 전의를 상실한 일본은 미국에 항복했다. 이로써 세계제2차대전은 종료됐고, 일제 치하에서 식민생활을 하던 우리나라도 해방을 맞이하게 됐다.
 
역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비극적 사건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폭 투하로 피해를 입은 자들, 방사능의 저주를 입은 자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 힘겨움은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유전되어 수많은 2세들이 암과 심근경색, 뇌성마비 등으로 오랜기간 고통을 받거나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회의 시선 때문에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원폭피해 관련 특별법 발의
 
이번 제19대 국회에는 여야를 막론한 4명의 국회의원 (이학영(민주당) 김정록(새누리당) 이재영(새누리당) 김제남(진보정의당))이 원자폭탄 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이 특별법안의 주요내용은 각 의원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원자폭탄의 의해 피해를 당한 한국인 피해자와 피해자 자녀 등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의료 및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이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 설치 △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가 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함 △한국인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추모하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을 활용하기 위한 기념사업 시행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이 이러한 제안을 하게 된 이유는 원자폭탄으로 피폭된 한국인 피해자가 7만여 명이고, 이들 중 생존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2600여 명이며, 자녀들까지 대를 이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현실을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원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원폭2세환우회들은 말 그대로 원폭피해를 입은 이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들은 부모가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줄도 모르고, 때로는 알았더라도 별로 의식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지냈지만 20대와 30대를 지나면서 갖가지 질병을 겪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피폭과 자신들의 병을 연관 짓지 못했지만 주변의 다른 피폭자 자녀들의 사례들을 보면서 피폭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도 그런 케이스였다.
 
"저는 무혈괴사증으로 4번의 인공관절 이식수술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좋지 않아 다시 이식 수술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우울증, 신경장애로 인한 불면증 약까지 먹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니 세상에 혼자 컴컴한 데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나 아프다', '나 힘들다'라고 소리라도 쳐봐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더군다나 원폭피해자 3세인 제 아들도 아픈 상태예요. 올해 31살인데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이고 온 몸이 다 굳어버렸죠. '내 탓인가'하면서 나무토막같은 아들 몸을 만지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 세상에 드러내놓고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배움도 부족하고, 소위 돈도 없고 '빽'도 없던 그녀는 누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야 할 지도 막막했다고 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시민단체와 한국교회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들의 어려움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 주축이 되어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를 구성해 국회의원들을 만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 좌담회 통해 피해자 문제 알려
 
지난 4일에는 한국기독교회관 2층 에이레네 회의실에서 원폭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좌담회를 갖고 원폭 피해의 실태와 원폭피해 2세 환우들의 문제, 지원정책과 과제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홍구교수(성공회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주영수 교수(한림대 의과대학), 최봉태 변호사(전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한정순 회장(한국원폭2세 환우회), 전은옥 사무국장(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이 패널로 참여해 원폭 피해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다.
 
의사로서 의학적 견해를 밝힌 주영수 교수는 "핵폭탄의 첫번째 효과는 물리적인 효과 고열과 파편이고, 그 다음 방사능이라는 치명적 피해가 진행된다"며, "건강검진을 기록을 보면 최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 방제작업을 했던 사람이 현장에서 1시간 노출됐던 사람이 500미리스퍼트가 검출됐는데 이는 피를 만드는 세포가 상해서 빈혈이 생기는 상태로 피가 만들어지지 않아 심하면 한달만에 사망하는 사람이 생기는 효과"라고 말했다. 이어 "2년 후부터는 (잠복기를 거쳐) 백혈병 환자들이 많이 나오고 그외 암들은 10~20년 후 잠복기 거쳐 발생한다"며, "한국인들 피폭자도 한국으로 돌아와 암으로 사망한 분들이 많고 심혈관계 질환도 많다. 심장, 혈관계통, 뇌혈관 질환 등이 1세들의 사망원인으로 많이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2003년 저희가 원폭피해 2세들 12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자의 경우 대장암 발병이 일반인 대비 7.9배 높고, 여성의 경우 간암이 13배 높으며, 백혈병 13배, 위암 6배 정도 높았다"고 말했다.
 
전은옥 사무국장은 "현재 우리는 정부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전면적 실태 조사 및 선지원 후규명을 원칙으로 한 의료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핵피해에 대한 연구조사 및 역사교육이나 평화교육의 현장에서 핵폭탄 피해문제가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민간차원의 기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좌담회에서는 원폭피해2세 환우회 한정순 회장의 작은 목소리가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저희는 가난으로 잘 배우지도 못하고 다 내 몫인양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적 장애를 앓는다든지 시각, 청각장애를 앓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결혼과 취직을 할 때 피해를 입을까봐 숨기고 사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상황인데 이제 고통당하는 우리의 아픔을 한국사회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억울하게 고통만 당하며 살기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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