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못 그리고 또 하나의 못

[ 대학로 행전 ] 대학로행전

오동섭 목사
2013년 07월 05일(금) 09:44
창밖엔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거리에는 우산을 쓰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티룸 안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마치 담벼락처럼 세상의 소음을 막아서고 있다. 대학로에 나온지 벌써 2년. 아내가 만들어준 따뜻한 티 한 모금을 마시니 2년전 그때가 사뭇 떠오른다.
 
"개척만은 안 하기로 했잖아요!" 사임서를 제출한 날 밤, 아내에게 들은 첫 마디였다. 사실 필자 역시 개척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개척만은 피해가고 싶었다는 게 맞다. 가진 것 없고 배경 없는 마흔 중반의 부목사가 개척이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고 순진한 결정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개척이어야만'하는 신앙적, 목회적, 개인적인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마치 요나처럼,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분명한 당위성이었다.
 
불신가정에서 홀로 예수를 믿으며 교회 안에서 성장했던 말 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의 시간들 그리고 목회자의 소명을 받아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교역자로 섬겨온 지난 15년 또한 놀라운 은혜와 감사의 시간이었다. 이제 담임목사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니 하나님을 향한 빚진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편, 점점 흔들리고 무너지는 한국교회를 향한 목회적 양심과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깊은 고민을 토로하던 중 담임목회를 위한 지원서에 목회철학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목회는 무엇인가? 그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시고, 경험케 하신 것을 통해 부르신 목회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대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묵상하던 중 특별한 체험을 했었던 일이 있었는데, 매일 매시간 끊임없이 밀려오는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가 감사해서 몇 달 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체할 수없는 눈물을 흘렸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십자가! 수치와 저주의 형틀이 은혜와 영광의 상징이 된 그 십자가! 그 때가 생각나면서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는 바울처럼 너도 그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느냐? 아니면 화려한 담임목회를 꿈꾸고 있느냐?'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았다. 담임목회 지원을 위해 써놓았던 신앙경력과 목회철학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어릴 적 화가가 되려던 꿈, 대학시절 시각장애인 교사, 꿈만 같았던 청년부시절, 신학교 졸업 후 모교회(포항기쁨의교회)사역, 서소문교회사역, 영국유학과 극동방송사역 그리고 동안교회에서의 5년간 사역. 그 하나님의 이끄심의 행간에서 중요한 네 가지 단어를 찾게 되었다. '선교, 도시, 영성, 문화와 예술' 이 네 단어는 하나님이 나에게 끊임없이 던져주셨던 담론들이었다. 그 안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문화목회의 비전이 이미 들어있었다. 그것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도시선교'로써의 목회!
 
   
개척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없이 5월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7월에 교회를 사임한 형편이었지만 한 때 화가를 꿈꾸며 선교의 열정을 품었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으로 가슴이 뛰었다.  비록 도시의 작은 모퉁이에서 시작하는 목회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조금씩 갚으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십자가'를 이 도시가운데 자랑할 수 있는 문화목회에 새로운 열정이 일어났다.
 
다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묵상하며 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세 개의 못과 새로운 사명을 감당해야 할 나의 못. 그 네 개의 못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십자가!
 
오동섭 목사 / 미와십자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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