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기독교 학교 세우기

[ 연재 ] 교육단상

원광기 목사
2013년 07월 04일(목) 13:13

3년 전 일이다. 어느 주일 4부 예배 후 예기치 못한 귀한 손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작년에 별세하신 둘째 누님의 친구분으로 20여 년 전 캐나다로 이민가신 강 권사님이 오신 것이다. 권사님은 누님의 절친이기도 했지만 영적으로 매우 성숙한 분이셨다. 언제나 말씀 보며 깊은 기도 생활을 하셨으며 예언의 은사도 탁월하셨다. 종종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원 목사에게 전하란다"고 말씀을 주고 가셨는데 그때 마다 신비롭게 예언의 말씀이 적중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이 누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기도 때 마다 서로 기억하는 관계가 되었다.
 
"먼 곳 캐나다에서 종종 목사님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교회가 훨씬 부흥 발전 한 것을 오늘 보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목사님, 이제 몇 년 남으셨나요?"
 
"은퇴 말이십니까? 2, 3년 남은 것 같습니다."
 
"후에는 무엇을 하시려구요?"
 
"글쎄요, 깊이 생각한 바는 없지만 은퇴를 'retire'라고 하지 않습니까?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이니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이제 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날이 기다려 집니다. 이제 까지는 국내에서 주의 일을 했으니 은퇴 후에는 선교지에 갈까 생각합니다. 그 곳 신학교에 가서 오랜 목회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신유의 은사를 주셨으니 부흥회를 인도하며 좀 느긋한 삶을 살아볼까 하지요."
 
"목사님, 주님께서는 한국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네요. 국내에 머물면서 세계 지도자를 양육하는 국제중ㆍ고등학교를 하시라는군요.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꼭 명문 학교가 된답니다. 기도해 보세요.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 날의 대화내용을 잊을 수가 없다.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던 일이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누님의 예언은 언제나 적중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학교를 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사명이라면 증표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끼는 후배 목사님과 만나 강릉에서 점심을 같이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퇴직 후에 학교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어디서 하시려구요?"
 
"글쎄, 강원도에서 했으면 하는데, 그 이유는 낙후된 곳에서 인재를 양육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 같다."
 
그 후배 목사님은 일어서면서 지금 당장 보여줄 곳이 있단다. 삼만 평이 넘는 땅인데 학교건물도 천여 평 잘 지어져 있고 인조 잔디로 된 국제 규격의 축구장도 두 개나 있다는 것이다. 멀리 동해 바다도 보이고 강릉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탁 트인 곳이었다.
 
가격도 100억원이 넘는 곳인데 25억에 매입할 수 있었다. 매입 후 유치권 행사자들이 속속 나타나 어려운 일이 많았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실감났다. 성직자나 교회 직분자들이 법정에 서게 되면 전도의 문이 막힐까 하여 염려하며 기도했다. 기이한 일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조카가 찾아 왔다. 내 이야기를 듣던 조카는 책임지고 이 일을 해결하겠다며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단시일 내에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일은 주가 책임져 주신다는 원리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원광기 목사 / 잠실교회 원로, 예닮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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