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같은 현지인 동역자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박영주 선교사
2013년 07월 04일(목) 11:29

   
▲ 마이카와 부인 안나, 박 선교사 부부가 마이카 은퇴식 때 찍은 사진

선교사가 사역을 중단 없이 계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들라면 지속적인 후원과 건강, 그리고 현지 체류를 위한 비자 문제일 것이다. 어떤 지역 선교사들은 일 년에도 몇 번 씩 선교지를 떠나 가족과 함께 비자여행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재정과 건강, 언어, 각종 은사와 능력 등 모든 것이 잘 준비되었음에도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다가 중도 포기하고 선교지를 바꾸거나 철수하는 사례도 종종 보고 듣는다. 비자 문제는 이슬람권이나 공산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피지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선교사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정식 비자를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가 필요하다. 사업 비자의 경우 상당한 투자금을 들여와야 하고 현지인 파트너가 꼭 있어야 하며, 선교사의 경우도 선교비의 확실한 후원 보증과 현지 기관(교단)이나 파트너의 초청장, 선교 사역 등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비자 문제는 결국 현지인 파트너 곧 현지인 동역자 관계와 직결되어 있다. 피지에서 감리교 교단 소속 선교사의 비자 문제는 어렵지 않지만 현지 교단의 배경이 없는 장로교의 경우는 쉽지 않다. 피지 기독교의 시작은 1830년대이며 당시 범 교단 선교 연합기구는 태평양 선교 구역을 교단별로 안배하는 '신사협정'을 맺고 피지는 감리교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피지 기독교인의 약 90%는 감리교도들이다. 필자의 현지인 비자 파트너이며 사역 동역자는 피지 형제교회 소속이며 교계 원로인 마이카(Maika) 장로였다. 본래 한 텀만 선교하고 돌아오려고 했던 필자가 장기 선교사로 지금까지 지내온 데는 현지 동역자 마이카 장로의 협력이 적지 않았다. 그는 피지 교도소 사역, 성서공회 사역 등을 하였으며, 호주에서 원주민 선교도 했다. 필자가 보는 그는 자기 백성을 깨우는 일에 열성적인 자존심 강한 애국자였고, 필자와 20여 년을 함께 동역하는 동안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인격자였다. 또 누구와 대화하든지 그 끝에는 격려하고 기도해 주었고, 피지 국내 이슈뿐 아니라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홍수, 지진, 전쟁 등 사건 사고를 접하면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피지의 많은 파트너들은 기부나 후원 등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하나 그는 늘 기도제목을 나누는 데 그쳤다. 그는 필자보다 15년쯤 연상이었지만 늘 친구처럼 교제하였고, 크고 작은 일들을 늘 의논하며 필자를 잘 섬겨 주었고, 때로는 영적인 멘토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선물이든 후원이든 외국인 선교사는 늘 주는 입장이고 현지인 동역자는 늘 받는 것이 상례인데 그는 필자의 아내가 몸이 아플때 스프를 끓여 오고, 자기 자녀들 일로 해외에 나갔다 오면 선물을 사들고 오는 보기 드믄 현지인 동역자였다. 그는 지금 은퇴하였지만 필자는 아론 같은 좋은 현지인 동역자를 주신 주님께 늘 감사했다. 피지에 온 선교사 중에 현지인 파트너와 불화로 갑자기 강제 출국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은 재정 후원이나 언어 등에 잘 준비된 선교사들이었는데 현지인 동역자와 인간관계 실패로 이민국에서 2주일 안에 출국하라는 통고를 받고 가재도구와 사용하던 자동차도 정리하지 못하고 다른 동료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초임 선교사들은 종종 비자 문제와 현지인 동역자 관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계속적인 선교의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

본교단 파송 피지 박영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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