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와 기름기를 빼는 생활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노창영 목사
2013년 07월 03일(수) 10:03

35년간의 목회생활을 하면서 생긴 탈진(Burn Out)으로 작년에 몇 달을 쉬면서 제주도에서 한달반 정도의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대정지역에 있는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유배지를 방문한 일이다. 정조, 순조, 헌종, 철종 네 명의 왕의 시대에 살았던 김정희는 1786년에 영조대왕의 사위였던 월성위 김한신 대감의 증손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기품 있고 뼈대 있는 집안의 학문과 서예를 배웠다. 세도가문의 줄을 타고 승승장구한 김정희는 중국 연경유학, 청나라 문물연구로 국제적 감각을 익혔고,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규장각대교, 충청도 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 형조참판,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다가 그의 나이 55세인 1840년에 집안배경에 따른 당쟁으로 제주도에 8년 3개월(1840-1848) 동안 유배를 간다. 이 기간이 추사 김정희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었으나 그의 추사체를 완성하는 성숙함의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제주도 유배 이전에 쓴 김정희의 글들은 너무 자신감이 있고, 힘차고, 두텁고, 기름기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불필요한 기름기를 제거하라고 자주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1840년에 유배가면서 써준 전남 해남의 대둔사의 현판인 '무랑수각(无量壽閣)'이란 글자와 1846년에 유배 중에 써준 예산 화암사의 현판의 같은 글자 '무랑수각(无量壽閣)'은 글은 같으나, 전자는 두텁고, 자신감이 있고, 기름기가 껴 있고, 후자는 자신감과 기름기가 빠지고, 골기(骨氣)가 있고, 담백하고 솔직한 추사체의 완성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즉, 6년 사이에 같은 글씨가 전혀 다른 필체를 나타낸다. 유배의 고난이 그의 서체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고난이 그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순결하고 담백한 인격과 서체를 만들었다. 그는 유배중인 1844년에 국보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는데, 이는 그의 깨끗하고 담백하고 순전함이 돋보이며 시서화가 합해진 추사체의 극치라고 일컬어진다. 서예를 하는 예술가들도 고난을 통해서 기름기가 더 빠지고 신품(神品)의 경지로 나아간다. 자기를 초극하고 허물을 벗고, 달인의 경지에 도달되게 되는 것이다.
 
목회를 하는 동안에 너무나 내 영혼에 영적인 기름기, 교만의 기름기, 배부름의 기름기가 너무 많이 들어찼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앞에 무릎을 꿇게 되면서 처음에는 겸손과 갈급함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영혼과 인격과 삶에 불필요한 기름기들로 꽉 들어차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을 받아 부요하게 되어 살이 찌더니, 하나님을 발로 차버리는 배은망덕한 죄를 저지르게 된다(신 32:9~15). 은혜를 망각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의 지방질은 고난과 말씀으로 제거될 수 있다(시 119:70~72). 욥은 고난을 통하여 경제적 부요의 기름기와 윤리적ㆍ영적 자기 의로움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모세는 40년간의 미디안 광야 생활을 통하여 귀족적 삶과 명예와 권력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과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연단을 거치면서 교양의 기름기, 지성과 학문의 기름기, 종교적인 공로와 의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각종 배부름과 부요함의 기름기는 우리를 배은망덕하게 하고, 탐욕스럽게 하고, 하나님을 잊게 하고 타락하게 만든다. 우리 영혼의 내면에 침투해 있는 각종 기름기를 제거하고 순전함과 담백함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노창영 목사 / 개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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