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6월 18일(화) 14:28
사랑은 타이핑 중(레지 루앙사르, 로맨틱 코미디, 15세, 2012, 한국개봉은 2013)
 
이전 프랑스 영화와 비교해서 본다면, 스토리와 연출방식에서 다소 놀랄 정도로 색다른 경험을 주는 영화다. 무엇보다 소재가 신선하다. 전후시대인 1958년대를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타자기(타이프라이터)가 중심 소재다. 타이핑 대회를 마치 하나의 스포츠 경기처럼 다루고 있다. 게다가 로맨틱 코미디 형식에 담아 놓았으니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추억하게 함으로써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하고, 또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서 찾아오는 젊은 관객들에겐 수동 타자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고풍스런 메이크업과 의상과 파스텔 같은 색상 그리고 추억의 음악은 당시의 분위기를 연상하는 데 제대로 기여한다. 재미는 물론이고 사회성을 비판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영화로서 성공할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다.
 
1958년은 스피드 타이핑 대회로 유명했다. 전쟁이 바꾸어놓은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는 속도의 가치다. 모든 것이 기술의 힘에 의지해서 빨라지는 시대였다. 다른 어떤 기계보다 여성이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기계는 타자기였는데, 스피드 타이핑 대회는 여성 스포츠로서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자기 제조 회사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개최된 대회였다고 하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오타 없이 가장 많은 타수를 기록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시골 잡화점에서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로즈(데보라 프랑수아)는 자신의 도시로 나가 살고자 한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오직 빠른 속도의 타자 실력뿐이었다. 그것도 독수리 타법이다. 필사적으로 매달린 덕에 루이(로망 뒤리스)의 개인 보험회사의 비서직에 취직하나, 안타깝게도 로즈는 사장의 맘에 들게 일을 하는 법이 없다. 비록 일은 못해도 타자 속도만은 빠르다는 사실을 감지한 루이는 비서로 계속 머물 수 있는 조건으로 타자대회에 출전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시작된 로즈와 루이는 코치와 선수에서 연인의 관계로 전개된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로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에 루이는 과거 첫사랑을 놓쳤던 장면을 떠올리고, 그 결과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오는 로즈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그녀를 떠난다. 
 
첨단 기술의 상징인 컴퓨터 시대에 아날로그 타자기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먼저 속도를 중시하던 시대를 반영하는 점을 생각해보자. 당시에 속도는 곧 성과였다. 영화 속 타이핑 대회에서 참가자 중 한 여성은 자판기를 빠르게 치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다른 장면에선 등수에 들지 못한 여성이 충격으로 졸도하기도 한다. 우승을 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는 장면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미국을 상대로 벌이는 결승전에서 로즈는 최첨단 제품으로 여겨지는 것보다 자신의 오래된 타자기를 들고 나간다. 아무리 속도와 성과가 중요해도 타인에 의해 짜 맞추어진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매우 감동적인 장면은 남녀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로즈의 잠재력을 본 루이는 그녀가 능력을 키워 도시에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했고, 로즈는 능력에 비해 여러 가지 이유로 다소 의기소침해 있는 루이의 기를 살려준다. 이것은 서로에게 돕는 자로서 남녀 관계를 맺어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며, 남녀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셋째, 영화의 중심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에 있어서 두려움의 문제다. 루이에게는 첫사랑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레지스탕스로 지내는 동안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못해, 결국에는 그녀가 자기 친구와 결혼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루이를 불안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조건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스폰서를 거부함으로써 그녀의 창창한 앞날을 막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친구의 도움으로 트라우마의 실체를 알게 된 루이는 마침내 로즈와의 사랑을 얻게 된다.
 
첫사랑이나 로즈와의 관계에서 루이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의 고백을 주저했다는 것이다. 첫사랑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해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두 번째로 찾아온 로즈와의 사랑에서 루이는 두려움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극복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랑을 주저하게 만들지만, 진정한 사랑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이 있어서 두려움을 내어 쫓는 법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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