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대물림

[ 목양칼럼 ] 목양칼럼

홍성호 목사
2013년 06월 12일(수) 14:55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 한 토막에 이런 것이 있다. "똑똑한 아들은 국가의 자식, 돈 잘 버는 자식은 장모의 사위, 그저 그런 자식이 내 자식."
 
이런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조금 자조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방 중소도시에 목회 현장을 두고 있는 필자에게는 웃자고 한 이 이야기가 현실적인 문제로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한 세대 전만해도, 아버지 장로 밑에 아들 장로가 가능했는데, 오늘날 과연 손자 장로는 가능할까? 특히나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있다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경우에도, 일터를 찾아서 또는 은퇴 이후에 손자손녀 봐주느라 일 년에 적어도 2, 30 가정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지방 교회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타지에서 직장을 갖고, 때가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될 때가 되면 조금은 난감한 경우들도 있다. 결혼 주례는 부모들이 정중하게 부탁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한 주 전 정도 얼굴을 대면하게 되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고, 심한 경우에는 결혼식장에서나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도 신랑 신부 둘 다 크리스찬이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소위 '영적 대물림'이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으며,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에게서 무엇을 보고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젊은 세대들이 들으면 '또 그 소리'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1900년대 초중반 그 어려웠던 시기에 예수님을 믿었던 가정이라면 지금 쯤 4대나 5대째 신앙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은 오늘 소위 '고향 교회'의 설립 교인이었고, 한국교회 성장 과정의 밑거름이었다. 그 분들은 시골 무지렁이로 다들 어렵게 삶을 사셨지만 적어도 교회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교회 일을 내 일보다 앞서 섬겼던 분들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교회에 붙어있던 사택으로 돌아오면, 달걀 몇 개, 고추, 호박, 푸성귀 등등이 마루 한 귀퉁이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수확하면서 첫 열매를 들고 목회자를 가장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참 풍성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목회의 연륜이 조금씩 깊어지면서, 바로 이런 분들의 기도와 헌신이 오늘의 내 목회를 이끌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영적으로 대를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일인가.
 
어떤 분이 말씀하신다. 집안 어른들이 쌓아놓은 기도와 헌신의 적금을 오늘 내가 타고 있다고, 또 어떤 분은 우리 어르신들의 믿음과 헌신이, 세상 말로 하면 오늘 우리로 하여금 '국가 유공자 자녀'같은 복을 누리게 한 거라고.
 
그래도 중고생들이 수요 기도회에 나와 말씀 들으며 무엇인가 정성들여 메모하고 또 열심히 기도하고 끝나고 나면 필자에게 다가와 수줍은 손을 내미는, 그리고 주일마다 손자 손녀를 안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 짓게 되는 것은 왜 일까?

홍성호 목사 / 순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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