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반대, 그 불편한 진실

[ 선교 ]

김윤태 교수
2013년 06월 10일(월) 13:05

일부다처제 등 근거없이 터무니없는 주장만 되풀이
반WCC세력, 비본질 이해관계 따라 '오락가락'
WEA총회 유치하고 통일교 출신 인사에 면죄부
'다름'을 '틀림'으로 보게 만드는 악의적 공격

논리학에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원래 주장을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으로 만들어서 공격한 다음 원래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오류다. 최근 WCC를 향한 보수진영의 비판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수진영은 WCC가 세계단일교회를 지향한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WCC는 창립 초기부터 단일교회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토론토 성명'에 명확히 기재하고 있으며, 지난 60년간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시도된 적도 없다. WCC를 종교다원주의, 비성경주의라고 매도하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WCC 헌장 1조에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WCC는 선교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때 자주 언급하는 '선교 모라토리엄'은 원래 존 가투 목사가 서구 선교사들의 간섭 때문에 아프리카 교회가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으니 5년간 철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것을 전후사정 보지 않고 WCC는 선교를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것 역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다.
 
공산주의니 용공이라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 WCC는 처음부터 복음은 인간의 이념 위에 존재한다는 신념하에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 WCC가 동성애와 일부다처제를 지지한다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비슷한 근거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의 근거 없는 비판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토록 WCC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신학적 견해차다. 고전적 선교개념은 교회가 주도하는 복음의 구두적 선포였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복음의 구두적 전파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까지 선교의 영역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쟁, 불평등, 기아, 인권, 환경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하나님 관점으로 교회가 적극적으로 사명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런 포괄적인 선교개념에 대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진영이 반발하며, 복음의 구두적 선포의 우위성을 주장하였다. 이런 신학적 논쟁은 한국에서도 재현되어 예성과 기성, 예장 통합과 합동과 같은 한국 개신교단 분열에도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면서 이후 WCC 찬반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견해차 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요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 신학계는 서구 에큐메니칼 신학의 흐름이나 WCC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만큼 성숙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문헌들을 보면 찬성쪽이나 반대쪽이나 WCC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논쟁을 일삼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심지어 박형룡 박사조차도 당시 WCC 문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용하면서 참석과 반대를 오락가락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다들 WCC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정치적 이념과 교권, 혹은 선교사들의 성향에 따라 WCC측, NAE, ICCC측으로 나뉘어 서구 선교사들의 아바타 전쟁을 우리끼리 벌였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WCC 찬반논쟁에도 이러한 정치적 요인이 재현되고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이 2009년 WCC 부산 총회를 유치하자 한기총 역시 2009년 WEA 가입 후 2014년 WEA 서울총회를 유치했다. 단 한 번도 총회를 참석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WEA 총회를 유치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미 WEA 한국파트너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를 유명무실화 시키고 WEA 총회를 유치한 것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사실 여기에는 WEA 북미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재형의 도움이 컸는데, 문제는 장재형이 통일교 선문대 교수출신으로서 2004년 재림주 이단 사이비 시비에 휘말린 직후 한국을 떠나 미주 지역에 머물다가 WEA를 통해 다시 한국 제도권 교회 안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으로 복귀하려는 장재형의 의도와 급하게 WEA 총회를 유치하고자 하는 한기총의 의도가 서로 맞아 떨어진 셈인데, 이를 증명이나 하듯 2010년 12월 한기총은 장재형이 이단이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거기다 2011년 11월 WEA 총회 유치 기념 감사 예배도 하필 통일교 소유의 건물에서 치루는 바람에 보수진영 교단들이 대거 불참한 사례도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국민의 소리"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각종 흑색선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WCC를 비판하는데 앞장을 서 왔는데, CBS 취재 결과 주요교단들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된 "다락방"소속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한기총은 슬며시 다락방을 이단에서 해제하는 선심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이단은 WCC 반대를, 한기총은 이단해제라는 선물을 각자 주고받은 꼴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WCC 반대는 이단들 뿐 아니라 한기총 자체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한기총은 이단시비와 금권선거, 과도한 정치적 몰입, 지나친 세속화 등으로 비판받으며 주요 교단들이 이탈하는 궁지에 몰려 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WCC 총회 반대는 궁지에 몰린 한기총으로 하여금 보수의 수호자로 거듭나며 위기를 탈출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WCC가 뭔지도 모르고 흑색선전에 놀아나고 있는 선량한 크리스천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는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아무리 견해가 틀려도 한 단체가 진행하는 사업을 하라,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 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진영의 궐기대회를 보면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2012년 예장합동 총회에서는 "우리가 믿는 예수가 월등하다"고 말하면서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를 위해 2억의 예산을 편성해 달라고 청원한 바 있다. 지난 3월 21일에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WCC를 "국군복장을 하고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로 비유하며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다 각하되었으나 이에 불복하고 4월 1일 다시 항고하다 이 역시 기각되고 말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WCC 총회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개신교의 대외공신력 하락 때문에 복음전도가 어려운데 WCC나 WEA가 뭔지도 모르는 국민들 앞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있으면 국민들은 한국 개신교를 어떻게 볼지 심히 걱정스럽다. 2013년 WCC 총회가 끝나면 2014년에는 복음주의 진영의 WEA 총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WCC 부산 총회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WEA 서울 총회는 하겠다고 한다면 국민들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세계적인 두 대회를 유치해놓고 전 세계 기독교인들 앞에서 우리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실황 중계하는 상황이 올까봐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의 적은 WCC도, WEA도 아니다. 진짜 적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를 이간질시켜 싸우게 만드는 자들이다. 다름(different)을 틀림(wrong)으로 보게 만드는 세력, 그래서 서로 공멸하게 만들려는 그 마귀가 지금, 우는 사자와 같이 한국 기독교를 삼키려고 돌아다니고 있다.

김윤태 교수/대전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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