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의 벗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

[ 논단 ] 주간논단

한헌수 총장
2013년 06월 04일(화) 15:17

2012년도 예장 통합 총회는 주제를 '작은이들의 벗’이라 정하고 가난한 자, 다음세대, 장애인, 다문화가정, 탈북자 등 다섯 계층으로 작은이들이라 규정하였다. 이를 보면 총회가 우리사회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으며, 가장 소외되어 있고 가장 시급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잘 인식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다섯 계층 가운데 '다음세대'는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할 대상이다. 총회가 마련한 지침서의 설명처럼 이들은 '선대에서 지켜온 신앙을 배우고 전수받아야 할 세대'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새 역사 창조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벗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벗이란 친구, 동무의 다른 말이다. 친구가 되고 동무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습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때 가능해지는 관계이다. 친구가 하는 말은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듣는다. 필자는 대학에서 다음 세대인 학생들에게 친구 같은 교수가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째는 가르치려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십 수 년 전 일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가 출석을 부르는데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는 머리에 5가지 색으로 염색을 했고, 머리띠를 둘렀고, 귀걸이도 하고 있었다. 이 학생을 어떻게 혼내 줄까를 한참 고민했는데, 문득 "이 학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나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그 학생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 학생이 그런 모습을 한 달 동안이나 유지했던 이유는 단지 그냥 한번 그래보고 싶었다는 것뿐이었다.
 
기성세대는 다음세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체험했다는 우월적 사고를 버리고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 그들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리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도 우리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이 시대와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우리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현명하다. 또한 신앙 면에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잘 배우고 전수받고 있다고 믿는다.
 
둘 째는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세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배운다. 필자가 교수가 되어 대학원 학생들을 지도할 때, 유학시절 지도교수님처럼 공휴일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과 함께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내 제자가 교수가 되어 나와 같은 학교에서 일할 때 나와 똑 같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 시절에 지도교수님의 지나친 부지런함이 싫어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게 같은 것을 느꼈던 제자도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미워하면서도 배운 대로 산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 세대가 다음세대의 벗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려면 우리가 실천으로 본을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선대에서 물려받은 것 중에서 분열과 다툼은 제하고 선한 것만 순전한 마음으로 지켜가는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서야 그들의 벗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 세대가 먼저 기성세대의 벗이 되려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성세대가 다음세대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우월한 점을 지혜롭게 전달함으로써 스스로 다음 세대의 벗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다음 세대에 우리의 신앙을 전수하고 교회를 물려줄 수 있고, 그들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우리의 바른 동역자가 되어줄 것이다.

한헌수 총장(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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