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적 삶의 총체적 변화에 관심을

[ 문화목회 이야기 ]

성석환 목사
2013년 05월 20일(월) 11:29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된다고 한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한다.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등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세계의 도시들은 성공,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도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고 있다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도시화는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 시절에 급속하게 이뤄졌다. 교회도 이 시기에 크게 성장했는데, 고향을 떠나 성공과 출세를 꿈꾸며 몰려 든 이들이 지치고 힘들 때 유일하게 의지하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교회였다는 분석이 많다. 도시가 확장될수록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도 확장되어 인격적 관계형성이 어려워지고 경쟁구도가 심화된다. 고립과 고독에 힘겨워하는 이들은 교회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소속됨의 안정감을 느낀다.
 
당시 어떤 교회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성공과 출세욕을 부추기는 것은 교회의 본분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도태된 도시빈민이나 철거민들을 돌보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도시교회의 긴급한 사명이라고 인식했다. 도시빈민선교가 공장지대나 노동자밀집지역에서 사회선교적 입장에서 전개되었던 반면, '성시화'나 '민족복음화'와 같은 도시복음화선교는 타락한 도시에서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후자의 흐름이 결국 세계사에 유례없는 한국의 대형교회를 탄생시켰고, 도시는 교회와 대립되는 타락한 문명의 총합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런 이원론적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성장하던 한국교회는 민주화 이후 다원화, 다양화, 다층화 사회에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제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확장되고 문화사회가 성숙해가는 한국사회에서 도시 자체를 죄악시해서는 교회의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도시는 죄악의 소굴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장이며 선교를 위해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자원들을 다양하게 동원할 수 있는 삶의 양식들이다. 도시교회들은 이러한 자원들을 활용하여 도시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관계를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도시적 삶을 분열과 고립으로 몰고 가는 불의한 원인들을 제거하고 공동체적 삶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도 시민사회와 협력하며 나서야 한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철학가이자 유명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현대도시인들에게 이미 종교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가치나 공동체적 삶을 공급할 장이 필요해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사랑'과 '예술'이라며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비록 기독교적 관점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과 예술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한국교회의 도시선교는 어떤가? 여전히 교회성장을 지향하여 도시적 삶의 총체적인 변화에는 별 관심을 못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화목회적 관점에서 도시선교는 사람들이 더 공동체적이고,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또 더 유연한 문화적 방식으로 복음을 만날 수 있는 조건들을 풍요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성석환 목사 / 도시공동체연구소장ㆍ동숭교회 문화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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