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 논단 ] 주간논단

승효상 장로
2013년 05월 16일(목) 13:53

윈스턴 처칠은 1960년 타임즈 잡지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건축가도 아닌 이가 건축에 대해 이토록 정확하게 설명한 것에 전율을 느낍니다. 예컨대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하지요. 왜 그럴까요? 다른 곳에서 살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함께 살게 되면서 그 공간이 정한 규칙에 따라 습관도 바뀌고 사고도 바뀌며 심지어는 얼굴까지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함께 산 부부는 틀림없이 닮아 있습니다. 수도자가 굳이 산속의 작은 방을 찾는 까닭도 그 검박한 공간이 그의 영성을 밝게 만드는데 도움 준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더디고 오래 걸리지만, 그렇게 건축은 우리를 바꿉니다.
 
그렇다면 건축의 뜻은 무엇일까요. 건축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들이 새로운 형식의 건물들을 짓게 되면서 이를 일컫기 위해 종래 자기네들이 쓰던 조가(造家)라는 단어 대신에 쓴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세우고 쌓는다는 건축(建築)의 뜻은 노동을 뜻하는 단어라 건축의 창조적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그리 탐탁지 못합니다.
 
인류 시작부터 있었던 건축을 가리키는 영어는 'architecture'입니다. 으뜸이나 근본을 뜻하는 'arche'와 구축의 기술을 뜻하는 'tecton'이라는 희랍어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니, 이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으뜸이 되는 큰 기술이나 근본적 학문을 뜻합니다. 그만큼 서양인들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건축을 원래부터 위대한 직능으로 생각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은, 소년시절 잠깐 종교지도자와 논쟁한 것을 제외하고는 공생애 3년 전 30년의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2천년 전 30세라는 나이는 요즘의 5, 60대 정도일텐데 아마도 직업적으로는 집안일을 물려받아 세상일에서도 원숙하셨을 겝니다. 아버지 요셉의 직업은 목수라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지요. 제가 어릴 때 교회에서 성극을 할 때면 예수님 집안은 늘 목공소로 배경이 꾸며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목수라...? 제가 건축을 하면서 생긴 의문입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목수가 있기에는 나무가 너무 없는 땅입니다. 집은 죄다 돌로 지었으니 목수는 뜬금없는 직업인데다 2천년 전에는 그런 직업의 분류도 있지 않을 때여서, 성경에 쓰여진 단어이지만 당연히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번역되기 전 희랍어로 쓰여진 성경에는 요셉의 직업이 tecton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 바로 architecture의 그 tecton입니다. 그러니 직종이라면 목수가 아니라 석수며, 직종 분류가 없던 때였으므로 요셉은 그냥 집 짓는 이요, 요즘의 분류에 따르면 바로 건축가였습니다. 그러니 집안의 일을 물려받았을 예수님도 건축가였을 게라고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의 서른이면 웬만큼 다 이루었을 나이이니 건축가로서도 성공했을 터이고, 건축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도 터득했을게며 더 많은 사람을 바꾸기 위해 광야로 나가셔서 우리 인류를 바꾸신 게 아닐까요? 제 상상이 너무 나갔나요?
 
어쨌든 건축은 우리를 바꿉니다. 이런 말이 가능합니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게 되면 좋은 사람이 되게 마련이고 나쁜 건축에서 살면 나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건축을 두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거나 자기 과시욕의 대상으로 여기면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 되어 바로 범죄입니다. 제가 건축가라는 제 직업을 일종의 성직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건축가를 뜻하는 architect의 a를 대문자로 쓰고 앞에 정관사를 붙여 the Architect라고 하면 조물주 하나님이 되는 까닭도 그럴 겝니다.

승효상 장로(동숭교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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