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20~2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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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14일(화) 13:47

월-능력 있는 일꾼
본문: 사도행전 6:1~7
찬송가: 312장
 
성령강림을 통하여 탄생된 교회는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과 성도들의 담대한 복음 증거로 인하여 교인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교회 내에 문제가 발생했다. 즉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에 헬라파 과부들이 그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히브리파 유대인을 원망했다. 사도들은 매우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 첫째, 사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처리하였다. 성령님의 인도는 사도들이 기도의 결과이다.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고 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사도행전 1장에도 보면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라고 했다. 기도할 때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둘째, 사도들은 성령님의 인도로 일곱 집사를 선택하였다. 사도들은 일곱 집사를 선택하기 전에 자격을 먼저 제시했다. 이 말씀에 따라 성도들 가운데서 일곱 사람을 뽑았는데,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였다. 이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심을 품지 않고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사람으로, 특히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 충만한 사람들에 대한 실증이 기록되었다. "믿음으로 아벨은…믿음으로 에녹은…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교회의 일꾼은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음이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모든 영적 경험, 체험의 원천이다. 그리고 능력의 원천이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물량적인 뜻이 아니고 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전적으로 나를 맡기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요 그 영이 충만하지 않으면 교회의 일꾼이 되지 못한다. 이들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칭찬 받는 사람이었다. 이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가 아니요 성령이 충만한 결과로 얻어지는 거룩한 지혜이다. 사람을 해치는 지혜가 아니요 살리는 지혜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비방과 책망거리가 되어서는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없다.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고 사도들은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게 되었고 교회는 더욱 왕성해 갔다. 능력 있는 일꾼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교회들마다 초대교회와 같은 부흥을 허락하옵소서. 일곱 집사처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백인 목사 / 성민제일교회


화-자라가야 합니다
본문: 벧전 2:1-10
찬송가: 338장
 
베드로사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계속 자라가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함으로 자라가기를, 산 돌들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짐으로 자라가기를 권면하고 있다. 1-3절이 말씀을 통한 개인적인 성숙이라면, 4-10절은 공동체적인 성숙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성숙에서 공동체적인 성숙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그 결과로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수 있는 삶으로 자라가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가 '성숙'하여야 할 이유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모습으로 자라가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가족의 자녀들로 자라가야 한다. 2절의 '갓난 아이들'이란 표현은 누가복음 2장 16절에서 아기 예수님께 사용된 말과 같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갓난 아이'는 순결하고 깨끗한 존재를 의미한다. 즉 죄인이 거듭나고 영적인 '갓난 아이'와 같이 되었다면, 그는 젖을 필요로 하는 유아이다.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굶주려 있으므로 갓난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젖을 빠는 것같이 말씀의 젖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갓난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젖에서 단단한 음식으로 바꾸게 되며, 가족 내에서 '청년들'과 '아비들'이 된다. 한번 주님의 축복을 맛본 사람은 육신의 옛 죄들을 벗어버리려 한다.
 
둘째, 하나님의 성전의 돌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일은 결코 없다. 그는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돌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 되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었다. 우리는 산 돌이신 예수님 위에 놓여진 산 돌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신령한 성전을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는 또한 이 성전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셋째, 새로운 나라의 시민들로 자라가야 한다. 신령한 의미에서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이스라엘'이다. 이것은 천상적이고 신령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오늘날의 교회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옛 언약 하에 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소유가 된'이란 말은 '자신에게 속한'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 되신 제사장이시므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교회로 자라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늘의 아버지, 연약한 자녀들을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는 은혜 가운데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시고 성숙한 교회로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준 목사 / 경동제일교회


수-조금만 더 깊게
본문:마 13:44
찬송가: 453장
 
밭을 쟁기질 하던 농부가 어떻게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 밭은 자신이나 다른 농부가 오랜 세월 동안 해마다 갈아엎어 농사짓던 밭이었다.
 
좋은 농사꾼은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쟁기질을 할 때 힘을 주어 깊숙이 갈아엎는다. 다른 사람 보다 5cm 더 깊이 갈아엎은 쟁기질이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보화의 발견은 우연 속에 감춰진 조금 더 힘쓰고 수고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성공하는 사람의 비결은 다른 사람 보다 조금 더 노력해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천국 보화이신 생명의 예수 그 은혜를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말씀의 은혜를 조금만 더 깊이 사모하라. 말씀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내게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경청하여야 한다. 졸지 말고 집중하여 조금만 더 설교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라.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성경을 더 깊이 있게 읽고 묵상하라. 그 보화를 발견하기 위해서 10분만이라도 더 성경을 읽으라. 성경의 밭 속에 생명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깨닫고 감동된 말씀을 보화처럼 귀하게 여기라. 
 
둘째, 기도의 능력을 조금만 더 깊게 하라. 당신의 기도를 조금 만 더 간절하게 하라.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짖기를 힘쓰라.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조금만 더 기도의 골방에 머무르는 시간을 길게 하라. 마음에 성령의 감동과 확신이 오는 것을 경험할 때까지 기도의 자리에 조금만 더 머물러라. 며칠만이라도 더 기도를 반복하라. 마침내 응답의 체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봉사의 수고를 조금만 더 많이 하라.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서 당신의 땀과 시간과 물질의 봉사를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이 하기를 힘쓰라. 남보다 앞서서 수고하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조금 더 많이 드려 보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되고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는 은혜의 충만함을 얻게 될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힘쓰는 자가 천국 보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천국 보화를 발견한 성도만이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여 주님을 섬기는 복을 받게 된다.

이런 성도가 참 보화이신 예수님을 심령에 품고 영적인 참 부자로 영혼이 잘 되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천국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여 심령에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말씀과 기도와 봉사의 신앙생활을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광영 목사 / 삼덕교회


목-지혜가 부른다.
본문: 잠 8:1-11
찬송가: 366장
 
지혜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되어 있다. 지혜에 관한 영어 단어들을 살펴보면 3개의 형용사 Wise, Clever, Crafty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하면 모두 다 지혜로운 이런 뜻이다.
 
Wise는 '지혜로운, 현명한'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만난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발은 선행을 베푼 다윗을 홀대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다윗은 군사들을 데리고 나발일가를 진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길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최대한 다윗을 정중하게 대접함으로 다윗의 분노를 잠재우게 된다. 그녀의 현명함은 자신을 구원한 것 뿐 아니라, 가족과 가문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매우 귀하고 능력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어 Clever는 '똑똑한, 재치있는'이라는 뜻이다. 지혜롭기는 한데, wise만큼 깊은 지혜는 아니다. 머리가 똑똑하고, 순발력이 있어 말의 재치가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사람, 임기응변이 뛰어난 달변가를 보고 우리는 Clever의 지혜를 확인하게 된다.
 
Crafty라는 말은 좀 더 다르다. 본래 Craft라는 말은 정교한 기술을 가리킨다. 이것의 형용사 형태는 '교활한', '약삭빠른' 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비겁한 지혜다. 여우는 교활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꾀를 쓰고, 남을 걸어 넘어뜨리고, 약삭빠르게 처세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우를 머리 좋은 동물로 인정하기는 해도, 여우를 존경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주님 지혜를 주옵소서'라고 우리는 기도한다. 어느 때 그렇게 기도하는가? 승진시험을 보고, 직장을 선택하고,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때 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한 지혜는 위의 3가지 중에서 어떤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그 모든 지혜의 간구가 단지, 나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보통 간구하는 지혜는 Wise 보다는 Crafty에 더 가깝다. 남을 살리고, 남을 구하고, 생명을 구원하고, 정의를 세우는 지혜와는 별 관계가 없다.
 
이것은 솔로몬의 지혜와 전혀 다르다. 명심하라.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지혜는 모두 다 Wise로부터 시작한 Wisdom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경배와 경외를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주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여 주사 나만을 위한 세상에 집착하여 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세계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귀한 이웃과 민족과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허락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성국 목사 / 평안교회


금-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본문 : 시 142:1-5
찬송가 : 364장
 
기도는 언제나 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적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도 살 수 없고, 우리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시편 142편은 다윗이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의 시기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 굴 속에서 심한 고난과 고독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다.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를 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어떻게 간구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첫째, 기도는 내 목소리로 간구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기도만큼은 내가 내 목소리로 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했다 해도, 기도는 어떤 기계나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다. 다른 사람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중보기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돕는 기도일 뿐 내가 기도해서 응답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고, 내가 소리 내어 간구한다는 다윗의 고백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솔직하고 간절하게 해야 한다. 다윗이 드린 기도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솔직함과 간절함이 드러나고 있다. 체면이라든지 꾸밈이 없다.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털어 놓고 간구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이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다윗도 원통한 일과 속상한 일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다윗이 선택한 방법은 하나님께 원통함과 속상한 일을 솔직하고도 간절하게 호소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요, 최상의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 앞에서 숨기는 것 없이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솔직하고 간절하게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기도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해야 한다. 다윗은 "나를 아는 이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이도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철저한 고독이며 단절이다. 다윗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가를 잘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시요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응답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고난을 이기는 성도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다윗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나님 아버지! 다윗처럼 내 목소리로 솔직하고 간절하게 드리는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철 목사 / 오산교회


토-주님의 기쁨   
누가복음 15:1-10    
찬송가:564
 
오월 가정의 달을 맞아 생각나는 분이 계신다. 박현옥 전도사님. 전도사님은 37년간이나 윤락여성선교, 청소년 선교로 온 몸을 바치신 분이었다. 주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해매이시던 모습이 연상된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그들에게 다가가신 분이었다. 하늘나라 가신지도 벌써 오래 되었지만 가끔 그 분이 생각난다.
 
오늘 이 시대에 청소년들이 가출을 많이 한다. 숫자상으로는 20여 만이나 된다하니 굉장히 높은 수치이다. 이들이 돌아갈 집은 없다. 집이 있다하여도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광주역 앞에 7~8평 되는 팔각형의 사랑의 집이 있었다. 당시 시에서 지었는데 지금은 이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전도사님은 광주역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붙들고 다니는 학교가 어디고 집은 어디인지 물어서 그곳에 전화를 걸고 선생님이나 부모가 오기까지 설득하고 복음을 들려주면서 기드온 협회에서 제공된 성경책을 주면서 기도해 주셨다. 그 당시 가출한 아이들은 대부분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영락없이 윤락가나 유흥가로 빠진다고 한다. 이를 사전에 막아 귀가시키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며 생명을 구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무더운 여름방학 기간 "전도사님, 좀 쉬셨어요?"라고 여쭤 보면 "내가 없는 동안에 한 아이라도 기차타고 가버리면 어떻게 해?"라고 하시면서 여전히 광주역 앞을 지키셨다.
 
1960~70년대에는 광주천변 윤락가에 시청직원과 같이 들어가서 만 16세 이하의 여자아이들을 데려와 보호소로 보내거나 직업학교 같은 곳으로 보냈다. 전도사님은 일찍이 이 문제를 아시고 내 아이처럼 돌보고 지도하여 시에서도 상을 받고 국가에서 주는 무궁화 훈장도 받으셨다.
 
주님은 말씀 하신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의 심정은 한 사람이라도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그 자비, 그 사랑이었다. 죄인 한 사람을 건지는 것이 곧 주님의 기쁨이셨고  한 사람의 죄인이 회개하면 그것으로 기뻐하신다. 주님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고 더 나누어 주기를 바라신다. 방황하는 오늘의 우리들의 청소년들이 주님께 나아오고 가정과 부모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 사회를 보시며 근심스런 눈으로 선한 일꾼들을 기다리실 것이다.
 
비록 지금은 전도사님이 세상에 없지만 그 숭고한 뜻이 살아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땅의 청소년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합니다. 찾아서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온 땅에 넘치기를 바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완 목사 / 옥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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