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아래서

[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3년 05월 13일(월) 11:31
며칠 전 본보 편집국장과 사장을 역임하신 고무송목사님께서 시집 한 권을 보내주셨습니다. 현재 목포대 교수인 김선태 시인의 '살구 꽃이 돌아왔다'는 시집인데 요즈음 제가 쓰는 칼럼에 등장하는 시들을 보시곤, 이 시집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 보내신다"는 말씀과 함께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바쁘다는 핑계로 최근 한 달 동안 서점 근처도 가보지 못했는데, 까마득한 후배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엔 늙은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 오백여 년 전 쌀밥에 한이 맺힌 이 마을 조상들이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평생 입으로는 먹기 힘드니 눈으로라도 양껏 대신하라는 조상들의 서러운 유산인 셈이지요/ 대대로 얼마나 많은 후손들이 이 나무 밑에서 침을 꼴딱거리며 주린 배를 달랬겠습니까/ 해마다 오월 중순이면 이 마을 한복판엔 어김없이 거대한 쌀밥 한 그릇이 고봉으로 차려집니다/ 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후략>"
 
이 시집 중간에 수록된 '그 섬의 이팝나무'라는 시의 앞부분입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은 입하 무렵에 꽃이 피므로 '입하목(立夏木)'으로 부른 것이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무의 하얀 꽃송이 모양이 이밥(쌀밥)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는 5월은 6, 70년대 한국 농가의 '보리고개'였습니다. 흉년이 들어 어머니의 품에서 빈 젖을 빨다가 굶어죽은 아기를 묻고, 그 앞에 이팝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 쌀밥에 한이 맺힌 선조들이 눈으로라도 배불리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던 '힐링' 나무인 셈이죠.
 
5월 중순, 이 계절이 바야흐로 이팝나무의 화양연화(花樣年華)입니다. 이팝나무의 절경을 보려면 밀양의 '위양지(位良池)'를 가야 합니다. 위양지란 신라 때 만들어진 못으로 처음엔 '양양못'으로 불리다가 후대에 위양지로 바뀌었는데 '양민을 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죠. 특히 이 맘 때의 위양지가 최고 절정입니다. 저수지 안에는 5개의 섬과 버드나무, 그리고 이팝나무 등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납니다.
 
지난달 식목일 즈음에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이팝나무를 심는 사진이 보도됐습니다. 청와대에선 "박 대통령이 1970년대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 식수 때 주로 이팝나무를 심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나라와 국민 모두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은 나무가, 나무 뿐 아니라 실제로 나라와 민족, 교회 모두가 흥하여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저 세속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국격이 높아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성숙한 국민성을 지닌 나라와 민족ㆍ교회로 흥하여지기를!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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