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는 안된다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남택률 목사
2013년 05월 09일(목) 11:02

가까운 이웃교회 장로님과 개인적인 일로 만난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목사님은 설교를 몇 년이나 하셨습니까?" "네, 한 30여 년 된 것 같습니다. 왜 물으시죠?" 내 대답과 질문에 장로님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저는 설교를 듣기만 50년 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제한 후 이런 얘길 내게 들려줬다. 설교를 50년 동안 들었기 때문에 설교자의 영성을 거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설교 본문에 얼마나 충실한지 무슨 주석이나 책을 참고했는지 그리고 설교자의 삶이 어떤지 모두 보인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설교를 하는 사람보다 설교를 듣는 사람이 더 힘들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교회로 승용차가 들어 올 때는 반드시 유턴해서 오게 돼 있다. 가끔 성급한 성도들이 중앙선을 침범해 빨리 들어오려다가 사고가 날 때가 있다. 나는 몇 번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을 광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교회 구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목사님이 교회 앞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것을 새 가족이 보았다고 했다. 목사님은 '법규를 지키라'하면서 본인은 정작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답이 궁색해진 나는 "말은 본받고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시오"라며 웃고 넘어갔지만, 말이나 행동 하나 하나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존경받고 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동네나, 사회에선 가려진 것이 많아 좋은 것만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받기란 정말 어렵다. 가정에선 아내, 자녀들에게 존경받기가 어렵고, 교회에선 가장 가까운 부교역자들, 당회원, 그리고 재정부장에게 존경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 늘 보고 있고,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방이 보이는 유리관 속에 서 있는 인형과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교인도 알고 세상도 알고 있는, 뻔한 일들을 생각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 불법재정운영, 논문 표절 등이 세간에 알려지며 교회의 정직성이 흔들리고 있다. 세습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아들에게 개인회사 물려주는 것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세습을 더 이상 시도해선 안 된다. 세상은 교회와 지도자의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 한다.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회복해야 된다. 부도덕성에 휘말리면 이단과 사이비에게 틈새를 제공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세상이다. 꼼수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의 고백이 실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신문 기자가 찾아와 "목사님 요즘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어서 "예, 행복합니다" 대답 했더니 "진짜 행복하십니까?"라고 또 묻더라는 것이다. 재차 묻는 질문에 "행복하긴 행복한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행복입니다"라고 대답 했다는 것이다. 그분의 얘기는 이렇다. 대형교회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태를 보고 들으면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마음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주님이 우릴 보고 계신다. 정답대로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멋지고 화려한 설교나 간증이나 기적과 체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삶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주님의 도우심이 절박하다.

남택률 목사 / 광주유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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