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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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택 목사
2013년 05월 08일(수) 11:28

십자군 원정대의 조직을 위해 1095년 11월 클레르몽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연설을 했다. "이슬람교도는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해 너희 형제를 공격하고, 죽이고, 납치해 노예로 삼고, 교회를 파괴하고, 파괴하지 않은 곳은 모스크로 바꾸고 있다. 그들의 폭력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맞서 일어설 때다." 그리고 한층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출발을 미뤄서는 안 된다. 봄이 오면 곧장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대로 동방을 향한 진군을 시작한다. 신이 바라시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감동했고,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하여 십자군이 탄생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유럽을 떠나 동방으로 향한 것은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빈민들로 구성된 '민중 십자군'이었다. 이듬해인 1096년 8월 15일을 출발일로 정한 교황 우르바누스의 말은 지킬 생각도 없이, 그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움직였다. 프랑스 북부와 라인강 근처의 독일 서부 등지에서, 마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듯 참가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연구자들도 5만에서 10만 명쯤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농민이나 도시의 하층민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도둑 등 범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있었다. 대부분은 제대로 된 무기조차 들지 않았고 군장을 갖춘 사람은 극히 소수였으며, 당연히 규율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은자 피에르를, 일부는 짐수레를 탔지만 대부분은 걸어서 따라가는 게 행군의 전부였다. 물론 병참의 개념 같은 것도 없었으며, 거쳐 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민중 십자군'에는 절대적인 강점이 있었다. '주 예수가 바라시는 일을 하러 간다(Deus lo vult)'라는 확고한 신념과 인적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도중에 쓰러져 숨을 거두는 사람이 속출하여서 유럽을 떠난 시점에 10만 명이었던 것이 소아시아로 들어갈 때는 5만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민중 십자군'은 그 상태로 1096년 8월 1일,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이는 교황 우르바누스가 출발일로 정한 날보다 2주일이나 앞서 도정의 절반을 답파한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십자군 원정대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참여했다. 상인들은 경제적 목적으로, 영주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그리고 영토를 넓히려는 목적 등등, 다양한 동기와 목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민중들은 순수한 동기로 참여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는 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진할 정도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순수한 믿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십자군 원정을 역사, 정치, 문화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목적과 이해관계에 빠른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 순수한 믿음,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민중 십자군'이 바로 그것이다.

박노택 목사 / 비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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