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찾아 눈보라를 뚫으며- 이재인 권사(하)

[ 향유와 옥합 ]

강영길
2013년 05월 08일(수) 11:01
   

기나긴 세월 이재인 권사는 그림자처럼 교회를 섬겼다. 늘 헌신하면서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일을 했던 것이다.
 
오래 전, 교회 커튼이 필요했다. 이 권사가 목사님께 커튼 하는 데 얼마 드느냐고 물으니 백만 원이라고 한다. 이 권사는 커튼을 하고 목사님께 다짐을 받았다.
 
"목사님, 내가 커튼했다고설라무니 말씀하시지 마셔유."
"왜요?"
"교인들이 말들을 하쥬. 다들 말들이 많으니께 다른 사람에게 말허질 말고 목사님만 알고 계슈."
 
남들이 쌀 한 가마를 헌금할 때 이 권사는 두 가마를 했다. 그때 쌀 한 가마는 좀 큰돈이었다. 대학 등록금이 쌀 한 가마보다 그리 비싸지 않을 때였다. 그 때 남편은 믿질 않으니 쌀을 낼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꾀를 냈다. 방앗간에서 쌀을 찧을 때 흘러내린 쌀을 한 됫박씩 담고 또 담아서 남편 모르게 모았다. 그렇게 한 달에 댓 말씩 모아서 찧어다가 헌금을 했다.
 
이 권사는 활발한 성격이 아니고 꼼꼼한 성질이라 설치거나 전도하질 못한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왜 집이는 누구보고 예수 믿으라고 안 하요?"
 
그러면 이 권사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꼭 말을 해야 혀? 자기들이 나를 보고 나오는 거지.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보고 설라무니 내가 부러우면 나오겄지."
 
이 권사는 말로 전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만큼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원한다.
 
이 권사가 교회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요즘은 다들 오래 살고 시골에서 70은 젊은 축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니 70에 은퇴하는 건 너무 이르다. 교회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 있다. 원로라고 해서 교회 봉사나 헌금 등, 책임은 다 요구하면서도 노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의논도 안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모세도 80에 소명을 받았다.
 
시골 교회는 목회자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안정적으로 신앙생활하기도 어렵고 교인들이 양육받기도 어렵다. 그렇게 보면 지금은 예수 믿기가 참 편하다. 과거에는 20리가 넘는 수암산까지도 성도들끼리 밥 한 그릇을 나눠 먹고 가곤 했다.
 
겨울 저녁이면 눈이 길 닿게 쌓였는데 그 눈을 밝고 부흥회를 다녔다. 폭설이 내리는데 그 눈을 뚫고 아침에 출발하여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이 되었다. 그때는 변변한 옷도 없어서 소매 끝으로 들어온 겨울 바람이 칼날로 피부를 벗기는 것처럼 추웠다. 교회에 도착하면 너무나 추워서 정신이 다 없었다. 그래도 엎드려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들으면 가슴이 다 따뜻해졌다. 부흥회가 끝나면 굶주림만 안은 채 추위 속을 되돌아와야 했다. 새하얀 들판을 걸어오면서 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이, 그날 들은 하나님 말씀이 교인들 가슴 속에 또박또박 남았다.
 
그 눈보라를 뚫고 간 이유는 딱 하나, 하나님 말씀 들으러 간 것이다. 요새야 말씀이 없어서 못 믿는 세상인가? 이제는 방송국도 있고 신문도 있고, 어느 누구도 눈보라를 뚫고 하나님 말씀 들으러 가진 않는 세상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편안해지고 보니 자기 몸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도 줄어드는 것 같다.
 
이 권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인들이 헌신할라고설라무니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지유. 그래두 겨울바람을 뚫고 말씀 하나 들으러 갔던 그 마음이라도 생겼으믄 좋겄시유."
 
필자가 떠날 무렵 황급히 과수원으로 나가며 이 권사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을에 꼭 오셔유. 과실 익으믄 설라무니 사과 한 짝 드릴터니께."
돌아오는 가을에는 사과 한 짝 얻으러 권사님을 꼭 찾아뵈어야겠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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