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6~1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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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02일(목) 16:52

월-가정의 중요성
본문 : 시편 112: 1-3
찬송가 : 88장
 
최근 크리스천 가정들이 부모와 자녀의 대화 단절, 고부갈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상적 가치관이 만연한 이 때에 가정과 교회에 대한 연관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교회이며, 가정교회가 건전하면 교회도 건전하게 유지된다. '건전한 가정교회'는 '건전한 지상교회'의 선결요건이 되며 이는 곧 이 땅에 천국을 이루는 기본이 된다.
 
천국의 개념을 나누어 볼 때 4H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음(Heart), 두 번째는 가정(Home), 세 번째는 교회(House of God),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국(Heaven)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즐거워 하는(시 112;1)' 온전한 삶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오늘날의 가정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해지고' '부와 재물이 가득한(3절)'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모든 가정 문제의 출발은 세상적 가치관에 따른 자신의 욕망 또는 목적의 완성을 향한 몸부림에서 오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부딪히는 삶의 몸부림이 이해보다는 대립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믿음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전통적 신앙은 교회와 천국은 많이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마음'과 '가정'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천국'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됨을 간과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천국'은 심령의 가난한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정이 온전치 못하면 교회가 흔들리고 만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H('마음', '가정', '교회', 그리고 '천국')의 개념이 균형 있게 자리잡을 때 비로소 완성된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호레이스 부쉬넬은 자녀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 6:4~5). 둘째, 말씀을 통하여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신 6:6~7). 셋째, 가정의 분위기를 신앙적으로 이끈다(신 6:8~9). 분위기는 말보다 더 큰 영향을 주므로 부모의 애정과 보호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깨닫게 하며, 가족 간의 우의는 세계인류는 한 형제라는 정신과 동족애를 갖게 해준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복된 가정을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복된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준 목사 / 경동제일교회


화-함께 가는 신앙 가족
본문:창세기 12:1~5
찬송가:430장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선뜻 출발할 수가 없었다. 완고한 아버지 데라의 반대가 출발을 더디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데라의 셋째 아들 하란의 생명을 거두심으로 신앙의 새 출발 곧 가나안을 향해가는 아브라함 가정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먼 여행 끝에 하란에 당도한 아브라함의 가정은 그곳에 주저 앉고 말았다. 아버지 데라의 연로함을 들어 동생 나홀이 더 이상의 여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데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떠나도록 일으켜 세웠으나 동생 나홀은 하란에서의 삶에 안주하여 약속의 땅을 향한 순례의 여행에 동참하지 못했다.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거부가 되고 함께한 조카 롯도 거부가 되었다.
 
첫째,훌륭한 믿음의 부모와 함께 가며 배우는 신앙생활은 자녀에게 큰 복이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과, 믿음의 자녀는 부모님과 주일에 함께 교회에 손을 잡고 가자. 새벽기도에 가끔씩이라도 함께 하기를 청하자. 믿음이 약하다면 좋은 믿음의 사람을 가까이 하고 그를 본받고 따르자. 복된 사람을 따라 함께 가는 신앙의 삶은 아브라함과 함께 한 롯의 길처럼 함께 복 받는 길이 된다.
 
둘째, 경제의 독립보다 신앙의 자립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요해진 조카 롯을 독립시켜야 할 때가 왔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원하는 곳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런데 조카 롯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준비는 되었지만 신앙의 자립이 준비 되지 않았다. 양보의 미덕을 배우지 못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었다. 그 결과 소돔성으로 나아갔고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다가 신앙을 거의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재물도 잃고 가정도 파괴되고 불 가운데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부끄러운 가정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셋째, 신앙의 길을 벗어난 가족은 시험이 오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조카 롯과 끝까지 동행하지 못한 아브라함은 조카 롯 때문에 많은 고통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엘람왕 그돌라오멜 연합군에 패한 소돔성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함께 잡혀간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전투를 해야 했다. 또 소돔 고모라에 임할 멸망의 불의 심판 때문에 여섯 번의 특별 기도를 해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걷자. 서로 격려하고 붙들어 주며 신앙생활을 함으로 함께 복 받는 귀한 은총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가정의 달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훌륭한 믿음의 종들이 가정에 일어나서 온 가족을 믿음으로 이끌게 하시고 모두 합심하여 신앙생활 함으로 복된 가문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광영 목사 / 삼덕교회


수-어린 아이를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
본문: 마 18:1~4
찬송가: 564장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에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님을 통한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해방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나라를 세우면 그 나라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에 있었다. 각각 그 마음에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특권의식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천국은 눈에 보이는 나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미래적 천국으로,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나라이며, 전적인 신뢰와 자기희생, 겸손해야 들어가는 곳이다. 제자들은 천국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고 저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교과서로, 거울로, 모범으로 내세운 존재가 바로 어린 아이였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지,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살펴보자.
 
첫째,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여기에 '돌이켜'라는 말은 '회개'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결단코'라는 말을 써서 아주 강한 어조로 말씀하시는데 '절대'라는 뜻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전에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첫째, 어린 아이는 단순하고 순진하며 꾸밈이 없다. 위신이나 체면의 관념이 없다. 교활하지 않고 외식이 없다. 둘째, 어린 아이는 겸손하다. 어린 아이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뒤로 자취를 감추고자 한다. 어린아이는 나타내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셋째, 어린 아이는 의존하려고 한다. 어린 아이는 자기 힘으로 그리고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넷째, 어린 아이는 믿으려고 한다. 어린 아이는 본능적으로 의존적이어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부모의 말을 꼭 믿는다. 둘째,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낮추다'라는 말은 '겸손'을 말한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겸손에는 마음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하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다.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셨다. 마음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겸손하셨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자신들에 관한 관심과 욕망으로만 가득 찬 제자들과 같은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관심과 뜻과 기대에 부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백인 목사 / 성민제일교회


목-성도의 특권
본문 : 약 5:13~18
찬송가 : 369장
 
기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기도를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기도해야 될 줄은 알지만 기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예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기도를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기도 해도 응답에 대한 확신도 없고, 또 응답을 기대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의무적으로 기도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기도하는 기쁨과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도를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든지,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든지, 하늘에 별을 만들고 계시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두 손을 모으는 순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중단하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집중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는 이렇듯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특권이다.
 
그러면 기도가 성도에게 특권이 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첫째, 기도는 고난을 이기게 하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13절)"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기도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고난에 처해 있을지라도 기도하는 것이 성도된 나의 특권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고난을 극복하고 응답 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질병을 치유하기 때문이다(14~16절). 질병에 걸렸을 때 병이 나을 줄 믿고 드리는 기도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혹 그 병의 원인이 죄에 있다고 해도 기도하면 병의 원인이 되는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되고, 그 죄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히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17~18절).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하니까 하늘이 닫혀서 비가 오지 않고, 다시 기도했더니 하늘이 열리면서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언급한 것은 엘리야가 이 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기도의 특권을 사용한 사람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기도의 특권을 사용하면 하늘 문을 여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특권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지금까지 기도를 부담으로 생각하고 의무로 여겼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시고, 기도가 성도의 특권임을 깨달아 이 기도의 특권을 날마다 사용하여 승리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철 목사 / 오산교회


금-어머니의 기도
본문:마태복음 15 : 21-28
찬송가: 543장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주의 말씀에서 주님 앞에 나온 한 어머니를 찾아보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는데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가 예수님께 부르짖는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이 어머니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 주님을 부름은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절박한 처지였다.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을 보는 어머니는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는가?
 
아마 이 어머니는 만사에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아뢴다.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주님!"
 
그러나 주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하고 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대답하신다, "그래 내가 고쳐주리라, 귀신을 쫓아 주리라"고 아니하시고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신다.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임에도 두로와 시돈이 부유한 도시지만 그들이 돈을 모으는 방법은 참으로 비정하고 간악한 방법임을 지적하신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께 절한다. 그녀는 돈 많은 이방 여인이었으나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절을 하면서까지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한다. 주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 하니라"고 대답하신다. 여인은 다시 말을 이어 "주여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이 여인의 대답에서 자신의 천함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한 어머니의 겸손한 태도를 볼 수 있다. 그 마음에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에서 딸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이러한 끈질긴 믿음에 주님도 마음이 누그러지게 된다. 딸을 살리겠다는 지극한 정성이 결국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다.
 
주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칭찬하신다. 그래서 불쌍한 한 생명을 건져주시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어머니의 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었고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다. 불행한 자녀를 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어떤 벽도 넘어 주님께 나아갈 때 구원에 이르게 하심을 보면서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믿음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한 헌신과 사랑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다시금 이러한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도록 노력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소중히 여기고 주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며, 사랑하며, 더욱 돈독한 믿음으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완 목사 / 옥합교회


토-성령의 열매 : 오래참음
본문:갈 5:22~23
찬송가:327장
 
갈라디아서에 기록되어 있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무엇인가? 사랑, 희락, 자비, 충성, 화평도 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의미가 더 잘 다가온다. 'love, joy, pea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듣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우리 마음을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게 한다. 이 열매들 중에서 특별히 희락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야말로 넘치는 기쁨이다. 주 말씀대로 살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 삶에 기쁨이 충만하게 넘친다. 얼마나 멋진가? "역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면 이런 열매가 맺히는구나. 예수님을 믿기 정말 잘한 일이야"라며 유쾌해지고 통쾌해진다.
 
그런데 9가지 열매 중 조금 어색한 것이 절제다. 기쁘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뭘 또 절제를 해야 하는가? 절제는 아끼고, 마음을 돌리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 것을 가리킨다.
 
보통 엄마들이 마트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유는 사고 싶은 물건, 갖고 싶은 물건이 많다. 주부들은 종종 마트에서 충동구매를 하고 만다. 이때 하는 말이 '절제 좀 해라'이다. 그래서 절제라는 단어가 영어로, 'self-control'이다. 스스로 조절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절제는 열매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리어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절제 보다 더 어색한 열매가 있다. 바로 '오래참음'이다. 왜 오래 참아내는 것이 성령의 열매, 축복의 열매, 믿음의 열매가 된다는 말인가?
 
누가 참는 것을 좋아할 것인가? 누구나 맘먹은대로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래참음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참음이 성령의 열매 그 9가지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는 뭔가 범상치 않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절제와 동일하게 오래참음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미덕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을 일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참고 살아야 하는가? 참아내야 할 일 투성이다. 그런데 잘 참아지는가?
 
오래참음은 열매이다. 그렇다. 성령과 소통하는 삶을 살았을 때에 우리에게 맺혀지는 열매인 것이다. 열매를 맺기 위해 오래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참음 자체가 열매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오래참음은 우리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요 곧 선물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저희에게 오래참음의 열매를 허락해 주옵소서. 듣지 않아야 할 것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참아내게 하시고, 지켜내야 할 것들, 헌신해야 할 것들을 위해 오래도록 참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성국 목사 /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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