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논쟁, 종교혼합과 다원주의

[ 선교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5월 02일(목) 15:15
"WCC 반대의 허구성을 해부한다" ③

'다양성 속의 일치' WCC가 추구하는 중요 가치 중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만이 회원 자격 갖춰
이단 차단하기 위해 까다로운 회원 가입 절차 운영
'초혼제 퍼포먼스', '바아르 문서' WCC의 공식입장 아냐
 
'다양성 속의 일치'는 WCC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다. WCC는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말이나 구호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회원교회들의 면면만 봐도 그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WCC에는 전 세계 345개 회원교회들이 참여하고 있고 이중에는 러시아나 쿠바, 미얀마 등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부터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들인 이집트나 이란 시리아의 교회들까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WCC는 회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로 규정하고 있다. WCC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이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WCC는 이단 등이 회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회원가입 절차를 운영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복음주의교회와 오순절교회, 개혁교회와 루터교회, 성공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협의체인 WCC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종교혼합주의'와 '다원주의'라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WCC를 다원주의, 혹은 혼합주의라고 비난하게 된 근거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 이후 전개된 '종교 간의 대화 프로그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뉴델리 총회에서는 최초로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WCC가 3차 총회를 기점으로 '종교 간 대화'를 시작하게된 이유는 바로 당시 시대적인 상황이 종교들 사이에 평화적인 공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러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선결과제였던 것이었다. WCC는 즉시 대화를 시작했고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렸던 WCC 4차 총회 때 타종교인 5명을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웁살라 총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대화 사이의 분명한 선을 그었다.
 
4차 총회 보고서를 보면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헌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종교인에 대한 진정한 기독교적인 접근은 인간적이며, 인격적이고, 적절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결국 타종교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면서 '종교 간 대화'가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정리하고 혹시 생길지 모를 오해를 불식했다.
 
이후 WCC는 지속적인 종교 간 대화모임을 갖고 당초 목적인 종교 간 평화를 확산시키면서 동시에 이 대화가 혼합주의나 다원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간다. 1970년 레바논의 아잘톤과 1974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각각 종교인 다자간 대화가 있었다. 이듬해인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WCC 5차 총회에서는 종교 간 대화가 '종교간 에큐메니즘'으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1979년에 WCC는 보다 강력하게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당시 WCC는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라는 문서에는 "첫째 위험은 기독교 메시지를 문화적 배경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시도이고, 타종교의 이데올로기들에 접근할 때 기독교 신앙과 삶의 진정성을 타협할 정도로까지 멀리 가는 것이다. 둘째 위험은 현존하는 종교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지 않고 타종교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문과 대화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가는 여러 방법들 중에 한 변종으로 보이게 됨으로 혼합주의가 될 수 있다"며 종교 간 대화을 할 때의 주의점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종교 간 대화는 늘 다원주의나 혼합주의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다. 1989년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산안토니오 대회에서 채택한 문서인 'Your will be done and Christ's way'에 실린 한 문구가 논란을 야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문서에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고 지적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어떠한 제한을 둘 수 없다"고 기록했다. 이 문서가 발표된 뒤 특히 우리나라 복음주의자들은 일제히 '다원주의 문서'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랬다. 이 문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타종교의 구원을 간접적으로 열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문구보다 더 큰 일이 1991년 열린 WCC 7차 캔버라 총회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를 주제로 열린 당시 총회에서 강연을 한 정현경 교수(미국 유니온신학대)가 초혼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오재식 선생의 책인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에는 그날의 분위기가 자세히 담겨있다. "1991년 2월 8일 총회 둘째 날 하얀 한복 차림으로 등장한 그(정현경)는 무대에 서서 신을 벗더니 총회장의 모든 참석자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한 뒤 종이를 태우는 등 그야말로 온몸으로 '초혼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총회장의 반응은 완전히 둘로 갈렸다. 다원주의에 관심을 둔 그룹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대단하다고 박수갈채를 보냈고, 한편에서는 '어디서 저런 무당 같은 사람을 데려왔느냐'고 날을 세웠다." 실제 당시 발제 직후 각국에서 온 정교회 대표들과 우리나라 총대들을 비롯한 각국의 많은 총대들이 자리를 떠났다.
 
WCC 성령론에 직격탄을 날린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는 하지만 강연자의 입장이었을 뿐 WCC가 초혼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지향한다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는 WCC의 신학적 입장을 비판할 때 △개인 신학자들의 견해를 아무런 설명없이 WCC의 입장으로 주장하지 말아야 하고 △WCC의 공식 입장인 '총회 보고서'나 '중앙위원회 보고서'에 입각해 비판해야 하며 △비판하는 내용이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등 세 가지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 교수의 퍼포먼스나 WCC가 다원주의라고 공격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바아르(Baar) 문서는 WCC의 공식입장이 될 수 없다.
 
성령을 주제로 열린 WCC 캔버라 총회에서 채택한 문서 중 제4분과 보고서에서는 WCC의 성령론이 무엇인지 규정했다.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삶과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다.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성령은 그리스도시오 메시아며 세상의 구세주되시는 나사렛 예수를 가리킨다.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을 주어 공동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그들의 사역을 성취하게 하신다.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본질 그 자체로서 거룩하시다. 성령은 이 세상의 다른 영들과는 구분된다."고 증언했다.
 
반WCC 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WCC 공식입장이 다원주의가 아니라 해도 WCC 안에 다원주의자들이 있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반WCC 운동을 펼치고 있는 모 단체의 최초 지도부가 전원 다락방 소속 교회 교인들로 구성됐다고 해서 그 단체의 구성원 전원이 다락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결국 'WCC가 다원주의, 혹은 혼합주의다'라는 비난은 한낱 비난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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