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위한 레퀴엠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5월 02일(목) 10:58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오멸, 드라마, 15세, 2012)
 
여전히 논쟁 속에 있는 제주4ㆍ3사건을 다룬 영화를 대하면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지슬'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터뷰에서 오멸 감독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슬픔을 말하고 또 달래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동기 탓에 감독은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사실을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인데, 여하튼 사실 재현에 대한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감독은 당시의 사건을 코믹하면서도 다분히 그림 같은 분위기로 연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화가로서의 이력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는 제주도 서귀포시 동광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면서도, 의미는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도록 했다. 감독의 이런 의도는 영화에서 잘 표현되고 있는데, 비록 제한된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말하고 있어도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외연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의 시점에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위로의 맥락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로 있었든지 당시 그곳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희생자라는 생각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사건을 바탕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말하는 슬픔과 위로는 영화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에 따라 군인들이 몰려오자 영문을 모른 채 동광리 사람들은 산속 동굴로 피신한다. 영화는 비좁은 동굴로 피신했지만 그들은 하루 이틀 지난 후에 내려갈 것을 기대하고, 돼지 먹이를 걱정하며, 집에 두고 온 어머니 걱정, 그리고 자식 걱정, 동네 청년 연애담 등 일상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그리고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는 이런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오직 소개령에 의해 죽어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영화 제목 "지슬"은 영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땅에서 나는 열매인 '감자'를 뜻한다. 감자는 진압군의 허기를 채울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 붙잡혀 있는 순덕에게 건네지는 것이었고, 동굴로 피신한 양민들이 조금씩 나눠먹으면서 오랜 시간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해준 양식이었다. 동굴 속의 양민들이 먹은 감자는 어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서도 자식을 생각하며 품에 안고 따뜻하게 데워놓은 것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단 맛이 더하다며 좋아한다. 대지와 어머니를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여하튼 대지가 모두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또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는 감자다. 이런 점에서 포스터에서 읽을 수 있는 "당신과 나의 뜨거운 감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땅은 열매를 통해 모두에게 생명을 주고 있지만, 땅위의 사람들은 서로의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혹은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게 함으로써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지슬'은 사회 고발적이면서도 치유적인 의미를 갖는 영화다. 또한 오늘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준다. 왜냐하면 정의가 부재한 사회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정의가 바로 서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양민 학살은 대체로 전쟁 상황에서 일어나는데, 이것은 혼돈의 시기일수록 그리스도인이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념의 갈등과 투쟁을 조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동일한 비극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슬'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환기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념보다는 생명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겠다. 분노에 사로잡힌 복수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양민학살은 그리스도인이 참여해서는 안 되지만 결코 관용해서도 안 되는 문제다. 제도적으로는 그것이 국제조약에 포함되어 있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을 무시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해치는 살인행위이고 무엇보다 무죄한 피를 흘리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 혹은 테러행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비전투원의 학살, 곧 선량한 시민의 학살 혹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살해행위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양민학살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의로운 분노를 발해야 하며, 양민학살의 주범이 권력의 힘을 빌려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화함으로써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동의 수위와 참여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어도, 양민학살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들을 위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한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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