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4월 25일(목) 14:52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Do not turn away after useless idols. They can do you no good, nor can they rescue you, because they are useless.(삼상 12:21)
 
고등부 아이들이 어느 날 진지하게 회의를 했습니다. 서로 너무 사랑하여 목숨도 주고 받을 듯 친한 녀석들인데 어느 날 자기들끼리만 가까운 관계로 인해 고민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주제는 이러했습니다. 새로 온 친구를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냥 교회 나오는 애'정도로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얼핏 들으면 '당연히 받아 줘야지!'하고 반응하게 되는 사안이지만 이 아이들은 나름 정말로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한 것 같습니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물론 성령의 이끄심으로 결론은 새로온 아이들도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안 그런 척 멀쩡한 척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 모두 날마다 이런 문제와 선택에 부딪히며 살아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의외로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누구를 새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에서 일상 다반사로 발생하는 일이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그것은 공동체를, 더 나아가서 인생을 '정지해서 좋은 것'으로 보느냐 '쉴새 없이 움직여서 좋은 것'으로 보느냐 하는 근본적 시각의 차이 사이의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 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상은 정지해 있다' 혹은 '정지해 있길 바라는' 시각입니다. 세상이 당연히 움직이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라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놀랍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세상은 마땅히 정지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안정추구 본능'이 그것입니다. 대통령이 정삼회담을 하면 '동북아 안정'을 이야기 하고 젊은이가 결혼을 하려면 '경제적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관계의 안정'을 위해 우리는 결혼을 하고 '주거의 안정'을 위해 평생 피 땀흘려 집을 장만합니다. '안정'이 무엇입니까. '정지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지된 세상'을 소망하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윈도우와 맥OS만큼이나 다른 또 하나의 시각은 '세상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고,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보는 시작입니다. 아무것도 '안정'되어 있는 것은 없으며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하시다는 것.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칩니다. '좋은 점도 없고, 날 구해 주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라가지 마라!' 우리가 피땀 흘려 쌓았지만 결국 무너지는 것, 잠깐 즐겁지만 결국 나를 구하지도 못하는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헛된 것이 무엇입니까. 돈, 지위, 명예입니까. 하지만 그런 모든 헛된 것의 바탕에 있는 것이 바로 '안정 희구'입니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의 선포는 '하나님 외에는 안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안정은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유일한 안정은 '하나님의 변화를 즐기는 것' 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쉬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지구가 쉴새 없이 자전하며 태양을 돌고, 우리 태양계도 쉬지 않고 우리 은하계의 중심을 공전하고, 우리의 은하계는 더 큰 중심축을 기준으로 쉴새 없이 움직인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런 우주에 '안정'은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변화를 즐기십시요. 변화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안정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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