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15~2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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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11일(목) 15:20

월-목표를 향하여
본문:빌립보서 3:13~14
찬송가:347장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한번의 실수 없는 점프를 위해서 1천 번의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김연아 선수 이야기는 이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한번 넘어지는 경험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장애물도 마찬가지다. 장애물을 만나 넘어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하고 있다. 푯대는 목표를 말한다. 즉, 사도바울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은 몇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첫 째는, 뒤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사도바울의 과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한 모습이었다. 살인자였으며, 매우 교만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결박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목표가 정해지니까 과거 일을 잊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듯이 지난 것을 털어낼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목표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둘 째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궁도경기에서 화살은 과녁을 향해 쏘아야 한다. 그것도 10점 만점인 중앙이 목표이다. 사도바울 또한 목표가 매우 분명하고 투명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었다. 그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뒤의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었다.  
 
셋 째는,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5절에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목표가 확실하고 분명한 사람은 결코 뒤돌아보거나 잠시라도 쉬지 않는다. 본문에서도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한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면 자연스레 우리 몸이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마음자세부터 이미 전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목표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데 신경 쓸 겨를 없이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를 유념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그 목표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며 기쁨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도바울과 같이 지난 일에 대한 것은 다 잊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갖게 하시고, 그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며 오직 하나님의 예비하신 상을 기대하게 하소서. 그래서 삶 가운데 항상 목표를 잃지 않고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정원 목사 / 만남의교회

 


 

화-주만 바라보나이다
성경본문: 대하 20:12
찬송가: 370장
 
여호사밧 왕은 B.C. 872-848년까지 통치한 북이스라엘 왕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남왕국 유다의 제4대 왕으로 25년간 재위하며 모세 율법에 따라 사법제도와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전면적인 종교 개혁을 실시했다. 그는 모압, 암몬, 마온 세 나라가 연합하여 여호사밧을 치러 왔을 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 신앙의 승리를 이룬 왕으로 유명하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 적군들이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와 우리 가정의 문제도 여호사밧 왕처럼 오직 주만 바라보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고 자기 능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호사밧 왕은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여호사밧 왕은 어떻게 국가의 위기를 극복했을까?
 
첫째, 온 나라 백성에게 금식 기도를 하라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특히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국가의 위기 앞에 병사를 모아 훈련시키고, 무기를 사들이기 전에 모든 백성을 하나님 앞에 일으켜 세우며 왕은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먼저 결제를 받아야 한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따르면 승리한다.
 
둘째, 역대하 17장 6절에 보면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하였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란다면 먼저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주변정리를 해야 한다. 이사야59장 1,2절에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내게 임하도록 영적인 성결을 준비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셋째, 그도 인간이기에 북 왕국 아합 왕과 사돈을 맺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는 주저함 없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갔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란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준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오직 주만 바라보며 기도로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의 손을 들어 주신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 들이 여호사밧 왕처럼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용식 목사 / 목포성문교회

 


 

수-에바다의 은총
본문: 사도행전 16:23-34
찬송가: 288장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가 막히고 혀가 어눌한 사람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시자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듣게 되고 말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에바다'는 아람어로 '열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막힌 것이 뚫리고 열리는 에바다의 은총이 임하는 가정들이 되길 바란다.
 
첫째, 에바다의 은총은 뜨겁게 찬송하는 자에게 임한다.
 
본문의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애매히 붙잡혀 실컷 맞고 온갖 고난을 당한 후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다. 주의 영광을 위해,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애쓰고 충성을 다했으나 차디 찬 감옥에 발을 쇠사슬을 차고 갇혀 있다. 그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그들은 뜨겁게 하나님을 찬미하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굳게 닫힌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어지게 되었다. 어두울 때 부른 찬송이 에바다의 은총을 가져왔다.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매인 것이 벗겨진다. 환경의 문이 열린다.
 
둘째, 에바다의 은총은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임한다.
 
본문의 사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할 때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벗어지게 되었다. 자식이 없어서 온갖 서러움 속에서 지내던 한나가 자식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며 하나님께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니 태의 문이 열리고 에바다의 은총이 임하여 사무엘을 낳았다.
 
셋째, 에바다의 은총은 은혜의 자리에 모이는 자에게 임한다.
 
변화산에 올라간 세 제자들이 모여 있을때 예수님이 변화되고 하늘 문이 열리는 에바다의 은총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1백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을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은총을 받게 되었다. 주의 성전에 모여서 은혜받는 자리에 모여 있을 때 에바다의 은총이 임한다.
 
넷째, 에바다의 은총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한다.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 있었다. 고침받고 나음을 얻고자 선지자 엘리사에게 찾아왔을 때 엘리사는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처방전을 내린다.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이 낫게 되는 에바다의 은총을 받았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철옹성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에바다의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은혜의 자리에 모여서 뜨겁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이 되어서 모두 에바다의 은총을 받으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힘써 모여 은혜 받게 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날마다 하늘이 열리는 에바다의 은총을 맛보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춘석 목사 / 참빛사랑

 


 

목-눈은 밝게 마음은 뜨겁게
본문 : 눅 24:13-35
찬송가 : 366장
 
교회에 오래 출석하면서도 변화가 거의 없는 교우를 보고 있는 것이 목회자로서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그 자체가 기적이기도 하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우들에게는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로 변화된 예들은 복음서 안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은 많지 않다. 그래서 본문은 중요한 사례가 된다.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고 열한 명의 직계제자들은 예루살렘 어딘가에 숨어 버린 상황이다. 각각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이 엄청난 사건 속에서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낙심하여 십자가와 관련된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수님이 그들 가까이에 이르러 동행하며 대화에 참여하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들이 주고 받은 대화의 중심주제는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이었다. 그때 그들이 초청하지도 않은 예수님이 개입하신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진정한 성경공부는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고 주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니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줄 알아보게 된다.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니 이것이 영적인 체험이 되어 삶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두 제자는 아직까지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열한 제자에게 숨가쁘게 달려가 입을 열어 증언한다. 부활신앙을 가진 두 제자들은 마음으로만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달려가 입으로 증언한 것이다.
 
엠마오 길 위의 두 제자들처럼 우리 인생길에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초대하지 않았어도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의 상황을 보고 듣고 계신다.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다가와 뜨거워지는 체험이 있어 부활하신 주를 만나야 한다. 주가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은 그들이 받은 감동이 일시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머리로만 이해하고 수긍하는 수준의 믿음이 아니라 몸으로 입으로 지속적으로 증언하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부활신앙이 어려운 것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활신앙은 머리로서의 이해가 아닌 삶에서의 체험의 영역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영적체험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도 엠마오마을로 가는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눈을 밝아지고 진리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경옥목사 / 월정교회

 


 

금-언제든지 행한다
본문: 눅 9:59-60 
찬송가: 449장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자기를 따라 오라고 초대하셨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서 나온 첫 마디는 "나로 먼저…"였다. 예수님을 따르고는 싶으나 지금 당장은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잠시 예수님과의 관계를 뒤로 미루기 위한 변명을 하고 있다.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님께는 용납되지 않는 변명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꽤 합당하게 보인다. 따라가기 싫다는 게 아니라 때가 좋지 않다고 한다. "절대 안 됩니다"가 아니라, "지금은 안됩니다"라고 한다. 언젠가는 전심으로 따를 것이니 지금 당장은 따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이다. 언젠가는 따를 생각이 분명히 있으니 지금 당장 따르지 않는다고 그분께 죄송해 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건 아니고 단지 조금만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답변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시며 어떤 사람의 변명과 꾸물거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신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예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가르치시고 끝까지 실천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불효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대장은 유효기간 있는데 바로 '오늘'까지이다. 예수님을 당장 따르지 않고 내일로 미루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손해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잃는 것들만이 아니다. 정말 내일이 끝까지 오지 않는 상황이다. 뒤로 미룰수록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필자는 목회생활을 통해서 그런 분들을 많이 경험다.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내일이 결정되고, 평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시인은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 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특별한 날을 살고 있다.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 여러 가지 형편과 이유를 가지고 주저할 때마다 오늘 말씀대로 내게 있는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에 바르게 결단하고 행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철인 목사 / 금산교회

 


 

토-인생의 방향
본문 : 룻기1:1-5
찬송가 : 450장
 
살다보면 모든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이때 인생의 방향을 잘 잡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어렵다고 무조건 살 길을 찾아다니다 보면 더 큰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 온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는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이유는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갔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땅에 거주하면 내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땅에 머물러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백 배의 축복을 주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들레헴 엘리멜렉의 가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엘리맬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기룐과 말룐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게 되었다. 그러자 엘리멜렉은 재산을 청산하고 베들레헴에서 떠나 모압지방으로 간다. 거기서 흉년을 피하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있지 않아 엘리맬렉이 죽고 말았다. 남은 두 아들이 모압여인과 결혼하여 모압에 온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나오미가 더 이상 모압지방에 머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두 자부와 함께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한다. 그러자 맏며느리와 달리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간다.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길은 인간적으로 보면 소망이 있는 길이 아니다. 따라가는 목적은 오로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거기 죽어 묻힐 것"이란 다짐 때문이었다. 시어머니와 베들레헴으로 온 룻이 밭에 나가 이삭을 줍다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다. 룻과 보아스의 사이에 오벳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게 되는데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였다. 룻은 결국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인생의 방향을 베들레헴 중심으로 볼 때 베들레헴을 등지고 간 나오미의 모습과 베들레헴을 향해서 오는 인생의 방향을 본다.
 
베들레헴이란 원래 '떡집'이라는 말이다. 떡은 말씀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베들레헴은 주님 또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을 등지는 방향이 되면 소망이 없다. 소망이 없어보여도 주님을 향한 방향으로 가면 놀라운 축복이 찾아오게 된다. 언제나 인생의 방향을 주님을 가까이 하는 방향으로 살아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태 목사 / 도동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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